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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파운드화로 계산할 때 반으로 나누기만 하면 됐다. 카드 청구서가 왔을 때 너무 행복했다.” 영국 런던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는 로라 콜레트(27)씨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얼마 전 미국 뉴욕의 티파니 매장에서 목걸이를 사고 블루밍데일즈 백화점에 들러 화장품도 구입했다. 환율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쇼핑을 즐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1월1일 영국 돈 1파운드 가치가 미화 2달러를 넘어섰다. 1992년 9월 이후 14년만이다. 기업과 경제당국은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투(two)-달러-파운드’시대는 영국인들 사이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뉴욕 여행이다.

영국인들 중에는 같은 언어를 쓰고 거리도 가까운 뉴욕 여행을 꿈꾸면서도, 비싼 물가 때문에 망설여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뉴욕행 비행기에 속속 몸을 싣고 있는 것이다. 대서양을 넘어 쇼핑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트랜스아틀란틱 쇼퍼(transatlantic shopper)’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영국 항공사 버진아틀란틱은 뉴욕으로 가려는 예약이 작년보다 20%늘었다고 발표했다. 브리티시 에어웨이는 뉴욕행 비행기 4대를 이번 주 추가로 배치했다. 버진아틀란틱의 폴 찰스 대변인은 <데일리메일>을 통해 “환율이 쇼핑객들에게 믿기 어려울만한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왜 이런 증가세가 나타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런던~뉴욕행 항공 요금 겨우 36만원

뉴욕으로 향하는 영국인들의 쇼핑목록 1호는 MP3플레이어 아이팟이다. 비디오 재생이 가능한 최신형 30G 아이팟이 영국에서는 180파운드, 미국에서는 약 128파운드(249달러)다. 미국에서의 가격이 영국의 절반에 가까운 엑스박스 게임기, 나이키 운동화, 리바이스 청바지 등도 대서양을 횡단하는 쇼핑객들 사이에서 인기다.

뉴욕의 메이시스 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11% 특별 할인을 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 관광객 덕분에 이 백화점이 있는 맨하탄의 5번가는 쇼핑 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달갑지 않은 눈치다. 미국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최근영국인들의 쇼핑 관광 열풍에 대해 “달러화의 약세가 5번가를 유럽 관광객을 위한 벼룩시장으로 바꾸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저렴한 항공편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도 달러화의 하락과 함께 쇼핑여행객이 급증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런던보다 싼 뉴욕의 호텔과 2백 파운드(약36만원)정도로 저렴한 항공요금이 더해져 소비자를 유혹한다”라고 분석했다. 버진아틀란틱 항공사의 폴 찰스 대변인은 “뉴욕 승객들은 휴식과 쇼핑여행을 겸하려 한다. 보스톤이 인기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라고 말했다.

쇼핑을 목적으로 한 여행객이 급증하자 영국 세관은 긴장한 분위기다. 세관 측은 “145파운드 이상의 소비사항을 신고하지 않으면 누구든 기소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영국 내 분위기는 세관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가디언은 뉴욕 여행과 관련된 기사에서 적절한 쇼핑으로 항공요금을 메울 수 있다며 구체적인 추천 쇼핑 목록을 제시했다. 추천대로 뉴욕에서 쇼핑을 한다면 1039.74파운드를 소비하게 된다. 이는 17.5%의 부가가치세를 내고 항공요금을 제하면 런던에서 같은 물품을 구입할 때 지불해야 하는 1479.89파운드를 초과하는 비용이다. 인디펜던트가 추천하는 쇼핑목록도 가디언과 큰 차이가 없다. 언론조차 세관의 감시 정도는 가볍게 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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