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학규, 민심 대장정 체험 바탕으로 대역전 노려

 
막사발처럼 투박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민심 대장정이 정치권의 각광을 받고 있다. 처음 그가 ‘여의도식 정치는 하지 않겠다’며 길을 나설 때만 해도 반향이 미미했지만, 민심 대장정은 이제 확실한 정치 히트 상품이 되었다. 저비용 고효율 정치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면서 유사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이 8월 한 달 동안 수해 지역 ‘민심 투어’에 나선 것을 비롯해 손 전 지사의 대권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정책 탐사’라는 이름으로 민심 투어에 나섰다. 이 외에도 많은 정치인이 민심 투어를 준비 중이다.

손 전 지사는 기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대통령 후보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 그는 늘 1위를 차지했다. 최근 그는 <기자협회보>가 실시한 언론 자유 및 발전에 가장 적합한 차기 대권 후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손 전 지사는 기자들에게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는 데는 야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심 대장정으로 이런 한을 말끔히 씻어냈다. 정치 하한기에 별다른 뉴스가 없어 고심하던 기자들은 ‘무기교의 기교’를 보여준 그의 민생 정치에 갈채를 보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심대장정 효과 체험

사실 민심 대장정은 1998년 경기도지사에 처음 출마했다가 떨어진 뒤 손 전 지사가 이미 썼던 방식이다. 당시 패배의 상처 속에 있던 손 지사는 경기도 민심 대장정을 통해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손 전 지사는 “진념 후보와 토론회를 하면서 민심 대장정의 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진후보는 추상적인 주장만 했지만 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민심 대장정을 기획하면서 손 전 지사의 참모들은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들은 정치가 대안이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판단하고 ‘기존 정치와의 싸움’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특히 한나라당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주목했다. ‘웰빙당’이라고 비난받는 한나라당이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국민들과 몸으로 부딪히고, 정치 엘리트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소외된 곳을 찾아 서민들을 만났다. 이런 취지에 동참해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소속 의원 10여 명이 8월26일부터 27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손 전 지사의 민심 대장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민심 대장정 과정에서 참모들이 방점을 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손 전 지사의 생각을 알리는 것보다 민심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꾸준한 모습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이라는, 그리고 진심으로 들으려고 하는 정치인을 원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캠프에서는 50일 동안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민들이 손 전 지사의 진정성을 믿어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모들은 높은 HQ(Honour Quotient, 명예지수)를 가진 손 전 지사가 본선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HQ(명예지수) 높은 손 전 지사, 본선 경쟁력 있을 것

캠프에서는 민심 대장정을 통해 손 전 지사가 교수 출신이라는 딜레마를 극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손 전 지사의 한 측근은 “그동안 손 전 지사는 유순한 이미지였다. 이번에 ‘독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했다. 손 전 지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력한 권력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심 대장정 기간에 수행단은 손 전 지사에 대한 민심도 꼼꼼하게 점검했다. 수행단이 파악한 대략의 민심은 ‘손학규는 좋아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후보로 나오는 이상 찍지는 않을 것이다(전라도).’ ‘손학규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켜보겠다(충청도)’.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계속 남아 있을 사람 같지 않다(경북).’ ‘한나라당 후보니까 손학규도 좋아한다(경남)’라는 것이었다.

여러 지역의 민심 중에서 사실 손 전 지사 캠프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곳은 PK(부산․경남) 지역이다. PK 지역은 손 전 지사가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곳이다. 아직까지 PK 지역의 민심이 손 전 지사에게 오지는 않았지만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민심 대장정에서도 반환점이 되는 50일 즈음에 PK 지역에 머무르면서 ‘PK 텃밭 가꾸기’에 애썼다. 그동안 손 전 지사는 여러 차례 자신이 민주계의 적자임을 내세우곤 했다. 그는 병석의 최형우 의원을 위문하고 고 제정구 의원의 기일을 챙긴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전종민 전 경기도 서울사무소장은 “PK 지역은 전통적으로 야성이 강하다. 밀양 손씨인 손 전 지사가 김해 공안분실에서 취조를 당한 인연이 있다. PK 지역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이명박 각축하면 손학규 부상할 것

캠프에서는 손 전 지사가 어렵게 얻은 점수를 활용할 시기가 머지않아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참모들은 특히 한나라당 내의 정치 지형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부딪치면 손 전 지사가 부각될 시기가 오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대선후보 경선 전에 강하게 맞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맞춰 시간표를 당겨놓았다. 특히 열린우리당에서 제기한 오픈 프라이머리(국민 경선제)를 놓고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입장을 정리 중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측에서는 각자 자기 진영에 손 전 지사가 귀의하기를 바라고 있다. 손 전 지사가 ‘보완재’로서 역할을 해준다면 박빙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지지율이 낮은 손 전 지사가 양 후보 중 한 명과 제휴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럴 경우 손 전 지사는 차기 정부 첫 총리로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손 전 지사측의 셈법은 다르다.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가 되겠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빈곤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콘텐츠에서 우월하고, 약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에 비해서는 안정감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막판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지금은 국민들이 절대적 선택을 하는 기간이다. 상대방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분명해지면 상대적 선택을 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이때 손 전 지사가 유리해진다”라고 말했다.

전반기 민심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손 전 지사는 후반기 민심 대장정을 한층 업그레이드 한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전반기에 여과 안 된 거친 민심을 직접 듣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반기에는 이런 민심을 관통하는 욕구를 읽어내고 이를 정책으로 꿰어내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만년 3위인 손 전 지사가 민심 대장정으로써 ‘언더 독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정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