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차기 대권 구도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세론과 민국당의 영남 정권 창출론으로 압축된다. 민국당에서 각각 TK와 PK를
대표하는 김윤환 최고위원과 김광일 최고위원이최근 ‘영남 정권 창출론’을 제기함으로써 이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국당의 ‘영남 혈투’는
본격적인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나라당과 민국당이 다투는 영남권에서는 야권의 차기구도가 첨예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반DJ 정서가
강한 영남에서는 누가 더 반DJ를 잘 할 것이냐를 놓고 싸우게 될 것이고, 문제의 핵심은 결국 DJ에게 빼앗긴 정권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공천 파동과 민국당 출현으로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일단 야권의 차기 구도에서 앞서가고 있는 쪽은 이회창
총재다. 이총재의 구상은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당초 이총재의 참모진은총선 전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가지 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범야권 통합 질서를 유지하면서 총선에서 최대 의석을 얻는 안이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여세를 몰아 이총재 대세론을 확고하게 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은 총선후 당내 분란이 문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총선 후에 문제가 될 소지를 공천 과정에서 없애고 100석이 안되더라도 응집력이 강한 ‘건전의석’을 확보하자는 안이다. 총선을 거치면서
이총재의 당 장악력은 확고히 하고 총선 이후에 대세론을 재구축해 가겠다는 전략이다.
‘건전의석’은 정말 건전한가 일단 이총재는 ‘최대 의석’이라는 양보다 ‘건전의석’이라는 질을 택했다. 1995년 DJ가
이기택씨에게 맡겨두었던 통합 민주당을 깨고 국민호의라는 응집력 강한 야당을 새로 만들면서 차기 대권 도정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총재의 건전 의석 구상은 차기 대선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의 강등요소를 당 밖으로 밀어 냄으로써 한나라다의 단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여권의 차기구도에 새로운 변수를 만듦으로써 이인제 선대위원장으로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를 동시에 담고 있다.
문제는 이총재가 계획한 대로 한나라당의 응집력이 강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총재가 계획한 대로 한나라당의 응집력이
강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총재측도 아직 장담을 못하고 있다. 이번 공천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이총재가 비주류에게 반격당할 때 누구
하나 나서서 육탄으로 방어하는 의원이 보이지 않았다. 막상 거사하고 보니 이총재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부대가 없는 것이다. 내심
기대했던 최병렬 부총재 마저도 “김윤환 . 이기택 씨를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은 문제다”라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단면이다.
이총재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 예상 밖으로 참패하기 않는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에서 이총재의 지도력이 확고해지지
않는 한 이회창 대세론을 다시 만들어 가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번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비주류 일부가 딴 살림을 차린 것은
예상했던 일이지망, 당에 남아 있는 의원들 사이에서 이총재의 정치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적지 않은 것은 걱정거리이다. 이총재가 너무 합리와
논리에 치우쳐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고, 엘리트주의에 대한 불평도 적지 않다. 이총재를 보좌하는 참모 그룹에
대해서는 'IQ는 높지만 EQ가 낮다‘는 평이나오고 있다. 또 김호일 의원을 재공천하고 이상열씨를 교체하는 등 공천 후유증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개혁 공천이라는 명분마저 흔들린 것은 이총재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되었다.
이총재측은 아직도 당내에 불만 세력이 남아있다는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총재의 변신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총선을 무사히 치르면
총선후 전당대회등을 통해 재신임을 얻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일부 떨어져 나가는 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순도 높은 당을
만들어 간다는 기조는 크게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총선후 판도의 시금석이 되는 것은 대구 . 경북의 강재섭 .박근혜 의원과
민주계 강삼재 의원의 거취라고 보고, 이들이 이총재를 중심으로 다시 뭉치면 큰 사고는 없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영남 후보는 누구인가 그러나 총선후 한나라당의 판도는영남 정권 창출론을 주장하는 민국당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김윤환 의원이 지역 감정 조장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한 영남 정권 창출론은 두가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우선 총선용
고육지책의성격이 강하다. 이번 총선에서 민국당이 영남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김대중 정권 중간 평가라는 기존 쟁점을 뛰어넘어 한나라당과 차별화 랄
수 있는 확실한상품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민주계 일부 인사들이 적지 않게 포진한 부산 . 경남지역과 달리 한나라당 이탈 세력이 거의없는 대구 . 경북 지역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영남
정서의 뿌리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김의원측은, 총선이 끈나면 한나라당 대구 . 경북 의원들이 대거 뛰쳐 나올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영남 정권 창출론이 그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회창 . 이인제등 유력한 차기 후보에 맞설 영남 인사가 있느냐는 점이다. 일단 이수성 전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김윤환 의원은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이 전총리를 지지했어야 한다는 ‘자기비판’까지 하고 나섰다. 김의원의 한 측근은
과거 두사람의 불편했던 관계를 의식한 듯 “김의원은 대통령을 할 생각이 없고 이전총리는 대통령 꿈이 있는 것 아니냐, 두 분이 힘을 합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아직은 이씨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씨가 대구 . 경북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당선되면
‘선착의 효(效)’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영남 후보가 아직 홗ㄹ치 않은 이번 총선에서 이씨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박근혜. 강재섭 의원도 영남 후보군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윤환 의원측은박근혜의원의 대중적 인기를 강조하면서 박의원이
이수성전 총리와 함께 유력한 영남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박의원과 강의원 두 사람은 일단 한나라당에 남아서 총선을 치르기는 하겠지만
총선후 야권 통합등 정계 개편 움직임이 불거졌을 때도 계속 이회창 총재와 함께 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국당이 내놓은 영남 정권
창출론이라는 상품이 영남 정서를 파고들 경우 독자적인 길을 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각제 관련해 총선후 지각 변동 가능성 그러나 영남 정권 창출론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지역 감정을 이용한
정치 행태라는 점에서 명분이 약하다. 아무리 영남의 상실감이 강하더라도 노골적으로 영남 정권을 만들자고 주장해서는 배영남은 물론이고 영남에서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또 다른 문제는 앞서 거론한 영남 후보군으로 이회창 .이인제 양강 구도에 맞설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거론되는 인사들이
모두 영남 지역 외에서는 대중적 기반이 약하고 영남 후보라는 점으로 인해 명분도 약할 것이기 때문에 전국적인 대권 주자로 떠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영남 정권 창출론이 총선 후에는 내각제 추진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않다. 깃발을 든 김윤환 의원은 올 전부터
내각제 선호론자로 알려져 있고, 민주계 역시 자파에 확실한 대안 후보가 없는 상태여서 양쪽 모두 결국은 내각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총선후에 내각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운을 띄워놓았고, 김대중 대통령 이후 대안이 없는 민주당
동교동계도 임기말 내각제를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어 총선후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金鍾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