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5월 KBS노조가 출범한 뒤 80년 해직의 진상을 폭로하고《불공정방송백서》를 발간하는 둥 자체비리 청산과 편파왜곡보도
시정에 총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하지만 브라운관의 공신력이 얼마나 회복되었는가 자문할 때 아쉬움이 큽니다.”
KBS 노사 양측 대표 각 5인씩으로 구성된 공정방송위원회 예능국 대표 강인식 프로듀서의 말이다. KBS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85년에 입사하여 87년 PD협회 출산의 산고를 치르는 선배들의 뜨거움과 진지함에 자책감을 느낀 것이 노조활동에 나선 계기였다고
그는 밝힌다.
“아직 관련 방송법규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사안에 대한 일관된 원칙적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이철규 의문사 특집’을 비롯해 문익환목사 · 임수경 뉴스때 각기 보도원칙이 흔들렸고 서경원의원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이철규
특집’은 노조의 철야농성에도 불구하고 전국방송이 안되고 끝내 로컬로 처리된 것이 가장 아픈 기억입니다.”
일선제작자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공영방송위원회의 당면과제를 사측의 하향적 편성권에 맞서는 노측의 적극적 편성권 확보에서 찾는다.
또 제작자율권은 오직 ‘공정방송’을 위한 목적에서만 신성불가침이라고 못박으며 공방위를 통해 걸러낸 합의사항에 이의를 제기해온 일부 PD들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노조’라는 방패 안에 웅크린 기회주의를 경계한다. 지난날 ‘힘있는 자’에 봉사해온 관영방송 KBS 아닌 공영방송
KBS에 대해 국민들이 잠정적 사면을 해주고 있다면, 이를 되갚는 길은 6 · 29 직전 KBS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음습하게 고였던 부끄러움을
채찍으로 오래 기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KBS를 포함한 6공언론 전반의 문제점으로 방송과 신문의 연대 미흡을 지적한다. 비단 언노련을 통한 노조들만의 연대가
아니라 지면과 지면, 브라운관과 지면, 브라운관과 브라운관이 묵시적 담합의 관성을 깨고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화 · 민주화 · 국제화’가 89년 KBS의 3대 방송지표였음을 상기시키며 그는 방송국 방문자들을 죄인 다루듯 하는
청원경찰의 권위주의에 목소리를 높인다. 또 브라운관으로는 온갖 금과옥조를 토해내면서도 말단 스태프진을 고가장비만도 못하게 여기는 방대한 조직
상층의 인간학대를 꼬집는다. 밤 8시 쇼시간대엔 낙원이던 나라가 9시만 되면 노사분규며 경제위기로 금시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겉도는 이 방송의
자가당착을 그는 ‘말 공장’, ‘그림 공장’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성할 수 있는 ‘신명’이란 어떤 걸까? 그는 90년대의 방송이 제시해야 할 비전의 의미를
아득한 옛날 저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추수 뒤의 대축제, 시련 후의 가무제에서 빌어온다. 사랑 · 이별 · 슬픔의 사이비
페스티벌, 겉만 번지르르한 인위적 버라이어티 쇼에서 벗어나 착한 백의민족의 심성을 되찾아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저력을 계발하는 일, 그것이 곧
비전의 제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물웅덩이를 없애야지 자꾸 모기만 잡자니요. 물웅덩이가 문제인 줄 다 알면서…. 그 물웅덩이가 바로 벽입니다.”
코미디프로 담당자인 그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연구하여 표피만 남은 고전에 살과 혼을 붙여보고 싶다는 것이 올해 소망이다.
코미디프로에 대한 애착 역시 그에게는 ‘우리 것’의 추구와 일맥상통한다. 이제 겨우 신혼 20일째라고 쑥스럽게 웃는 안경 너머의 눈빛은
부드럽지만 부단한 자기각성으로 고삐를 거머쥐며 90년대의 평원을 향해 말달리는 젊음의 충만된 에너지가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