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상이 새해 정치 낙관 … 통일문제 관련 “정상회담보다 민간교류
절실” 국민 열 사람 가운데 다섯이 새해 정국을 낙관하고 있다. 비관하는 사람은 셋, 나머지 둘은 지난해와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다소 비관적이다. 견제의 호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셋인데 비해 악화쪽을
짚는 사람이 다섯, 나머지 둘은 ‘지난해 수준’이거나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경제적 비관은 그러나 90년대의 10년을 한 묶음으로
전망할 때 ‘희망’으로 바뀐다. 국민 열 사람 가운데 다섯이 앞으로의 한국경제 10년을 ‘제2의 일본이 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1990년 새해를 맞아 정치 · 경제 · 통일문제 등 국내 주요 현안에 대해 전국 20개 도시의 만
20세 이상 남녀 1천1백86명을 상대로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吳澤燮교수) · 통계학팀 (李載昌교수)과 공동으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밝혀졌다.
변혁의 실험대, 2천년대 진입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은 1990년의 새해 벽두에 그려보는 한반도의 정치 · 경제 기상도는
‘쾌청’은 아니되, ‘청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화면접을 통한 이번 여론조사는 올해 상반기에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는 등 국민의 정치 참여도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 정치 · 경제 ·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의식을 미리 점검해본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15일의 이른바 ‘청와대 심야 대타협’ 직후 연사흘에 걸쳐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한결같이 ‘90년대의 새로운 정치상’을 역설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5공청산을 위한 마무리조치는 아직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실시된
이번 조사는 80년대의 과제를 떠안고 동시에 90년대의 비전을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90년 한국의 국내 정치상황은 한마디로 고여있는 물의 ‘물줄기’를 터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먼저 盧泰愚대통령의
6공화국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맞는다. 출범 후 2년 동안 5공의 뒤치닥거리만 한다는 평을 들어온 盧대통령으로서는 그야말로 ‘뭔가를 보여줄
’시기를 맞이한 셈이다. 물론 5공청산이 실질적으로 완벽하게 매듭지어진 상황은 아니다.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것이다. 1盧3金의 합의를
‘야합’이라고 몰아붙이는 사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盧대통령도 계속 허리춤을 잡힌 채 어정쩡한 자세로 머물러 있을 상황이 아니다 3金씨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새정치’ 평민당 金大中총재는 4당체제가 국민이 선택한 것인만큼 바뀔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90년대의 새정치’를 역설하고 있고, 민주당 金泳三총재나 공화당의 金鍾泌총재는 아예 드러내놓고 4당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정치구도가 개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당 구조로는 안된다”는 것이 민주 · 공화 양김총재의 공통된 견해다.
정계개편 얘기는 집권 여당인 민정당이 먼저 끄집어낸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여야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지 정치질서의 새로운 구도를 모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계에 변화를 몰고 올 또 하나의 중대변수는 야권통합 기류다. 현재까지는 통합 움직임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되어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초에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안에 야3당의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야3당
총재들이 정계구도 재편을 구상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당내 결속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야당의 전당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 확실하다.
2월의 임시국회에서도 여야 격돌이 불가피하게 되어 있다. 국가보안법 · 안기부법 · 교육관계법 · 경찰중립화법 등 89년에 미처
풀지 못한 ‘법적청산’의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또 4월에는 국회의장과 부의장, 각 상임위원장의 임기가 끝남에 따라 국회요직을 놓고
한차례의 돌풍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자제 법안 통과에 따른 지방의회 선거도 올 상반기 안에 실시될 예정이다. 이래저래 정치권은 올 상반기에 넘어야 할 산이
첩첩으로 펼쳐져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물음은 이같이 불투명한 새해 정치상황을 국민은 과연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폈다. 전체 응답자 중 42.2%인 4백99명이 새해 정치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와 별 차이 없을 것’ ‘다소 비관적’ ‘매우 비관적’이라는 반응이 전체 응답자의 반에 가까운 49.6%를
차지했다는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정계의 변화 움직임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고 풀이될 수 있겠다.
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낙관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40대가 56.9%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32.7%로 가장 적은 반면
비관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20대가 34.9%로 가장 많아 젊은 세대일수록 새해 정치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성별로는
남성(45.3%)이 여성(38.0%)보다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구분에서는 낙관적으로 보는 응답자가 전라도(69.5%), 부산(46.9%), 서울(46.2%), 대구(46.1%),
인천(41.5%)순으로 나타나 호남지역이 영남이나 서울지역에 비해 정치권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다는 것을 표출시켰다. 그러나 광주지역의
37.0%의 응답자는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인보다는 제도 중심의 변화를 원한다.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요청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것이 두 번째의 질문이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24.1%가 ‘정치인의 자질 향상’을 첫 번째로 지적했다. 이 응답내용을 연령별로
세분하면 20대가 49.5%, 40대가 44.0%, 30대가 42.0%의 반응을 보여 연령층이 낮을수록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자질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학력 소지자일수록 현 정치인들의 자질 향상을 바라고 있다. 대졸 47.9%, 고졸
42.7%, 중졸 30.6%순이다.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한 다음 요건으로는 야당통합을 포함한 4당체제의 재편성(17.5%), 지방자치제의 전면적인
실시(16.6%),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15.8%), 악법개폐(13.8%)순으로 제시되었다. 거국 내각체제의 구성도 2.6%의 응답자가
지적했다.
이 조사결과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4당체제의 재편성이나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 등 제도적인 보완보다는 제도 운영의 주체인
정치인들의 자질향상을 첫손가락에 꼽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지역감정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해 일반 국민들은 지역감정 해소를 정치발전의 부차적인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결과로 봐야 할 듯싶다.
정치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보다는 4당체제의 재편성이나 지자제 실시 등 제도나 체제가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국민의식의 커다란 변화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겠다. 한 개인의 정치력보다는 체제나 제도 중심의 전반적인 정치력 향상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4당체제가 재편성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응답자가 부산 · 대구 등 영남지역(25.1%)보다는 광주 등 호남지역(35.1%)에
많다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바꾸어 말하면 영남지역의 응답자가 현4당체제를 상대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 실시를 정치발전의 요건으로 지적한 응답자는 전라도가 41.7%로 가장 높은데, 대구가 39.1%, 대전이 37.7%,
광주가 31.5%의 순으로 나타나, 지역별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대부분이 지자제 실시를 지적하고 있다. 또 고학력일수록 (대졸
34.4%, 고졸 27.6%, 중졸 22.4%, 국졸 21.6%) 지방자치제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새해에는 전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 1990년은 특히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전면에 부상할
시기로 예측되고 있다. 동구권의 거센 대변혁의 열기가 국제질서의 전면적인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고, 더불어 동서 양진영의 체제 경쟁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28년만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린 대사건의 상징적인 의미를 채 소화해
낼 겨를도 없이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마침내 민중의 힘에 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1965년 이래 24년간 1인독재를 유지시켜왔고 동구권 바르샤바조약 회원국 중 유일하게 개혁을 거부해온 루마니아 정권의 붕괴는
분단 한반도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루마니아가 동구권에서 개혁압력을 받자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루마니아를 돕겠다며
체제수호의 동반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진 마당에 북한은 유일한 동반자를 잃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새해에
전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6공화국은 출범 이후 대북한문제를 비롯해 북방정책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본격집권기에 들어선 90년에는 보다 활발하고 신중한 북방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문제는 이제 국내외의 여건으로 보아
전환의 시기를 맞은 것이다.
남북통일, 고르바초프의 영향이 크다 《시사저널》의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국내 정치상황 진단과 더불어
남북한 통일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국민의식을 살펴보았다.
우선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등 한반도의 주변 4개국을 제시하고 ‘이 4개국 중 남북한 통일을 원하는 나라와 원하지 않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들은 이 질문에 예상밖의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60.6%)이나
중국(51.6%)보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체제인 미국(61.1%)과 일본(69.6%)이 남북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소련이나 중국과 비교해 볼 때 큰 편차를 보이지 않았지만, 특히 일본의 경우는 소련이나 중국보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반응이 의외로 높게 나타났다. ‘통일을 원하는 나라’에서도 일본(15.3%)이 다른 3개국(미국 28.0%,
소련 23.3%, 중국 24.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 결과를 보여 국제정치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감각을 엿볼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남북한 관계개선에 영향력이 큰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되느냐’는 질문에 1위 盧泰愚
대통령(26.2%), 2위 金日成(22.3%)에 이어 부시 미국 대통령(17.9%)을 젖히고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19.6%)을
3위로 꼽았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와 부시가 근소한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한반도에 관한 한 국내외 정치판도에는 미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미국 일변도의 반응을 보여왔던 점에 비추어볼 때 주목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동구권에 일고 있는 자유화의 물결을 비롯 고르바초프의 개방
· 개혁 정책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더 나아가 지지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결과에 대해 서강대의 張達中교수는 “고르바초프가 세계 정치변화의 주역으로서 촉매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교수는 또 “盧대통령이 1위로 나온 것은 남한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며 더 나아가 남북 관계개선에 남한이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일반여론의 표출로 봐야 할 것”이라고 조사결과를 해석했다.
남북한 통일과 관련, 국내의 여건 조성을 묻는 질문에서도 응답자들은 과거와는 다소 다른 반응을 보였다. 즉, ‘현 시점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20.6%)보다는 학술교류나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한 민간교류의 확대(40.2%)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특히 응답자의 연령, 학력, 성별, 지역에 관계없이 약
40%가량이 남북관계개선의 최선책으로 민간 교류의 확대를 제안했다.
10.1%가 남북한 신문 · 방송 개방을, 8.9%가 남북한 물자교역의 확대를, 그리고 국제경기에의 남북한 단일팀 구성 참가는
5.8%가 각각 지적해 남북한 민간교류를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