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話, 민담은 한 민족의 이야기이면서 민중의 이야기이다. 어른으로부터 어린이에게로 전달되는 이 통로는 유구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민담은 그 민족(집단)의 정서적 유전자가 박혀 있다. 한 민족의 역사·문화적 자기동일성을 퍼뜨리고 이어나가게 하는 것도 다름아닌
저러한 민담들이다. 민담은 산업 사회가아무리 급속하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73)이 어린이를 위해 최근 펴낸 《세계민화집》(전5권 믿음사)은 우리나라의 민담들뿐 아니라 전세계 69개국
1백57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이야기들은 미당이 올 초에 펴낸 시집《산시》와 맞닿아있다.
《산시》가 세계의 산들에 대한 대시인의여행 혹은 교감의 결과라면 세계 민화집은 세계의 ‘정신적·정서적 어머니 산’에 관한
순례이며 재해석이다.
5공 시절 잠시 ‘권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가 ‘지탄’을 받기도 했던 그가 세계의 산과 이야기의 본질적 구조에 침잠하는 것은
무상함일까, 반추일까.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그의 세계민화집 앞에서는 부질없어 보인다. 이 땅의 미래, 즉 어린이를 향한 대시인의 사랑이 크기
대문이다. 어린이가 걸어가야 할 길에서 “우리 것만이 아닌 가까운 곳·먼 곳의 풍속과 지혜와 삶을 더 넓게 알아야 한다”는 아동문학가 정채봉씨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이 민화집에는 세계의 풍속과 역사 문화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한 깨달음과 슬기가 배어난다.
이 민화집은 모두 다섯 주제로 나뉘어 있다. 거짓과 참다움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은 《쑥국새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리석음과 지혜
편 《아프리카 껌정양반들의 수수께끼》, 태어남과 죽음 편《모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욕심과 사랑 편 《혼자서만 다 먹어 버리는 여자》,
용기와 희망 편《개구리가 코끼리 딸과 결혼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사람과 세상살이에 필요한 덕목들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이 민담집은 외국여행중
현지에서 수집한 이야기와 그곳의 책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가려뽑아 글 줄거리를 기둥으로 삼아 새롭게 풀어쓴 것이어서
번안에 가깝다.
미당은 “민화는 각기 민족의 슬기와 정을 잘 소화해 담고 있는 것이어서 그 민족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밝히면서
“이 재미와 이익을 혼자 누리는 것이 미안해”10대의 지혜의 친구뿐 아니라 더 나이가 많은 이에게도 마음 터놓는 벗이 되기를 바라면서
책으로 묶었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 미당의 민화들은 읽는 이야기에 가깝다. 말과 글이 혼연일체가 된 미당의 문장은 그 내용의 탁월함과 더불어
어린이에게 좋은 우리말 공부가 될 터이다. 최승호 시인은 이 민화집이 “어린이에게 우리 말의 멋과 가락을 일깨우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감독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상력과 글짓기의 텍스트로서 우선 이 책을 교실 안의 선생님들께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미당이 ‘들려주는’ 세계의 옛이야기 갈피갈피에 권문성 배석빈 채희정 하윤식 한지희 등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