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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마저 ‘검열 불가피’ 강변

 남아공의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인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작가들의 전시가 83년 이래 10여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갔다. 한달여간의 이 전시가 한국의 무화미술계에 던진 잡음과 파문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들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우리 문화예술계가 아직도 얼마나 저개발 상태에 놓여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인종차별의 철폐를 위한, 세계가 다아는 전시에 검열과 차별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놀라온 것이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계속 은폐하며 관료적 무신경과 교언으로 대처해온 문화행정의 작태는 놀라움을 넘어 깊은 우려를 갖게 한다.  그러나 아마도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침묵으로 이 사건을 방조해온 문화예술인 자신들의 무신경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 점은 즉각 항의 성명을 낸 외국의 출품작가나 관려난체의 신속한 반응에 비교할 때 많은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검열’에 실제로 참여했던 미술게 중진급 인사들의 “검열이 불가피했고 또 가능한 것”이라는 식의 강변 또한 깊은 우려를 갖게 한다. 이번이 처음은 아닌 이런 류의 예술검열 사건 때마다 단지 관료만이 아니라 일부 중진급전문 예술인들의 시대착오적 예술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ㅇ르 우리는 엄중히 주목한다.  둘째로 주목되는 것은 이 전시회의 관리자인 반아파르트헤이트 세계미술가협회측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 기구는 한국에서의 이같은 전시 왜곡 및 검열사타에 대한 정보에 접한 후 단지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마무리 이외에 실제적으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뉴욕 AAA와 좋은 대조를 보여주었다.  파리의 협회가 취한 이러한 행동은 ‘남아공의 인종차별 철폐’라는 도덕적·정치적 명제를 위하여 작품을 기증하고 글을 기고한 전세계 예술가들의 참여에 대한 협회의 정신적 책임과 유엔 반아파르트헤이트센터의 정신을 다같이 정면으로 배반하는 모순된 행동이다.  이 점은 제3세계의인종차별이나 인원문제 같은 도덕적 테마들을 이용하면서도 이 테마의 진정한 ㄴ역사적·정치적 국면에는 무관심한, 단순한 비즈니스로 전락한 국제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숙제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떡고물이 많은 나라’로, 그리고 관료건 미술인이건 문화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한탕하기 좋은 나라’로 88올림픽 이후 소문이 나 있는 것이 한국이라 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문화적 야만의 오명과 국제문화 시장의 ‘봉’으로서의 표적에서 벗어날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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