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홍씨(37)가 최근 고려원에서 펴낸 장편소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독자에게는 신선한 읽을거리이지만 그에게는 ‘실험’이었다.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는 현상을 거슬러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쓴 최초의 소설이며, 권력의 복마전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그려 한국 소설의 영역을
넓혔기 때문만은 아니다.
83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의 소설적 이력을 살펴보면, 그는 한국소설의 전위에 위치해 왔다. 그가 펼쳐온 소설적 전위란 ‘현대성
증후군을 앓는 현대인을 새로운 형식으로 파헤치는 것’이었다. 예컨대 상품화 된 인간, 익명성의 강조, 우상파괴, 절망의 심연, 치밀한 내면묘사,
성적이미지에의 집착 등을 강조하면서 양식적으로는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스토리텔링, 즉 전통적 소설의 틀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온 독자들(물론 소수이지만)에게는 《누가 용의…》는 그의 ‘변신’으로까지 비친다. 그는 “80년대를 통과해 온 30대의
절망, 암담한 상황 그 자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면서 작가들이 대중소비사회 속의 대중소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강제규씨의 원작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지만, 상황묘사나 인물, 에피소드 등에서 변형을 가했다. ‘정치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질
이 소설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 대권주자 박인규와 암살된 여당 입후보자 정용욱, 남산으로 표현되는 ‘모처’와 방송기자 최종수 그리고 박인규의
정부인 앵커우먼 김지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쟁탈의 복마전을 기둥줄거리로 삼고, 대학시절을 회색분자로 지나온 최종수와 그 의 친구인 운동권
출신의 신문기자 김현수 그리고 수직적 신분상승을 꿈꾸는 김지원의 지난날이 삽입된다. 정용욱을 살해한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이 소설인데, 가상의
상황과 인물들이 벌이는 공작과 음모 테러 고문 회유 등은 우리가 겪어온 정치적 사건과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야당 대권주자의 정부였던 김지원이 최종수와 진실한 사랑에 빠지고 최종수는 친구 김현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정용욱
사건의 진상을 ‘기습적으로’ 폭로하면서 이 소설은 끝난다. 최종수와 김지원의 진실이 거대한 권력과 그에 ‘조종당하는’ 언론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러나 최종수가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동기나 김지원이 ‘양심선언’을 하게 된 배경이 ‘역사적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란
인상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정의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핏빛 사육제’이면서 ‘연애소설’로도 얽힌다.
그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누가 용의…》 말고도 그가 《문학정신》 4월호에 실은 중편 《남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도 영화와
관계된 소설이다. 관객이 영화화면을 묘사하는 형식으로 “포르노와 다름없는 현실세계”와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으면서도 좌절의 기록밖에 없는
우리들”의 내면 풍경을 그린 것이다. 영화 평도 가끔 쓰는 그는 “세상읽기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영화읽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