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핵심부에 접근한 기업, 막대한 특혜로 사세 확장
권력은 목적의 정당성만 추구할 뿐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은 백안시했다.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절차정당성은 장애물로 인식될 뿐이었다. 따라서 성장의 주역인
기업들은 초법적 실체, 즉 권력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능력은 둘째이고 권력 중심부에 접근하느냐 못하느냐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69년 청와대가 주도한 부실기업 정리, 80년초 국보위가 단행한 중화학투자조정, 그리고 이번에 돌출한 5공의 부실기업 정리에서는
이러한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권력 핵심부에 접근한 기업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막대한 특혜 금융과 함께 부실 기업을 인수하여 통제된 경쟁
속에서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아예 분해되는 경우가 반발했던 것이 사실이다.
위헌 결정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원년 선언
근원적으로는 헌정상의 자유시장 질서가 파괴된다.
경제계가 정권 교체기마다 권력의 향방에 긴장하고 유착 고리에 민감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우위적 시장질서에서 권력의 품에 안기지
않고서는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정경공존 논리를 채득했기 때문이다. 정경공존을 위해 기업이 치르는 간접 비용도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막대한
정치자금, 성금기탁 같은 암거래는 일종의 공존 비용이었다. 간접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기업의 자진력(self-propelling engin)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상품가격에 직접 반영되어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피해는 경제계가 정부의존적 타성에 무감각해져 될
수 있으면 공정한 경쟁을 회피해보려는 자세였다.
이번의 위헌 결정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그것이 왜곡된 자유시장 질서에 대한 계몽이자 정화 조처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원년을 선언한 셈이다. 그렇다고 이번의 위헌 결정이 과거 권력의 초법적 역할을 평가하는 준거가 될 수는
없다. 권력의 초법적 역할은 그 나름대로 필요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헌 결정은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설정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경제 질서를 해방시키기 위한 분기점일 뿐이지, 과거의 초법적 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법리가 되어서는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시장 기구에 대한 권력의 간섭을 감시하는 첨병은 자유시장질서이다. 권력은 시장 기구의 심판자가 아니라 보조자로서 가능할 따름이다.
기업의 권력 공포증도 크게 완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면책특권을 소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들은 정부 의존적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장 기구를 스스로 정화하고 유지해야 할 새로운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