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한국 요리와 프랑스 요리, 또는 다른 외국 요리들 간에는 차이점보다 닮은 점이 많다. 근처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면 꼭 들르는 광화문의 ‘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두부 전문 요리 식당도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식당이 강원도 음식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이 식당에서 김치를 넣어 부친 메밀전병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프랑스에서 ‘크레프’라고 부르는 요리와 너무나 흡사해서 놀랐다. 원산지인 부르타뉴 지방에서 메밀
걀레트라 부르는 요리와 너무나 비슷했다.
강원도와 부르타뉴, 척박한 환경까지 비슷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메밀전병 안에 한국 고유 음식물이 들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켈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방(아스테릭스와
고인돌의 고장)에서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형태는 미국식 팬케이크보다 조금 덜 두껍고 둥글며 속을 채워서 둘둘 말아 만든다. 맛은 메밀의 진정한
맛을 살려 시골 음식 느낌을 준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점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도 지역과 부르타뉴 지역은 여러 점에서 비슷하다. 예를 들면, 이 두
지역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중심부와 떨어져 있고, 아직도 척박한 토양과 추운 기후로 인해 살기 어려운 환경 조건을 지니고 있다. 부르타뉴 지방은
대서양의 잦은 바람으로 인하여 비가 끊이지 않아 늘 잿빛의 낮은 하늘을 하고 있다. 아주 드물게나 제대로 된 하늘을 볼 수 있다. ‘나무가 있는
집’에서 먹은 메밀전병 역시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절벽이 많고 화강암의 산지인 부르타뉴 지역은 원탁의 기사들과 마법사 메를렝, 아르튀르 왕의 고장으로 옛날이야기에 어울리는 멋진 풍경을
가졌지만 이곳의 삶은 예로부터 아주 힘들었다. 부르타뉴 주민들은 각별한 그들만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지며 20세기 초반까지는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고 켈트 사투리인 부르타뉴 말을 썼다. 밀을 경작하기 어려운 이 지역은 십자군 기사들에 의해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곡식을 받아들였고
이를 검은 밀이라 부르다가 사라셍( 메밀의 프랑스어 이름)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아랍인들을 사라센이라 일컫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밀의 색과 맛의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영양가가 풍부한 이 메밀로 싸고 양이 많은 밀가루가 만들어졌다. 이 곡식은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강원도의 감자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 즉 부르타뉴 지역에서는 수프를 먹으면서 곁들이는 빵이 부족하여 달걀과 버터와 우유를 넣어 걀레트라는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걀레트는 경제적이고 영양이 풍부하면서 들판에서 할 점심식사로 운반하기가 쉽다. 점차로 다양한 내용물을 첨가한 여러
종류의 걀레트가 만들어졌다.
농부들의 소박한 음식에서 고급 요리로 변신
전설에 따르면, 크레프는 특별한 찬거리가 없었던 한 농가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 부르타뉴 공주에게 저녁식사 대접을 위해 그 집의 소녀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요리라고 한다. 그 조리법은 훌륭했으며 이 소녀는 부유하고 멋진 젊은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바로 크레프 조리법 덕분에
말이다.
사실 요리의 역사에서 새로운 조리법은 특별한 찬거리가 없는 곳으로 왕이나 귀족이 예기치 않게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를 대접하기 위해
재빠른 상상력을 발휘했다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여하간 이 걀레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연초나 부활절, 민간의 촛불 축제 요리로 자주
등장했다.
걀레트는 지방 음식에서 축제 음식으로 되었고 19세기 초 파리 부르주아들의 눈에 띄어 프랑스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걀레트는 발전을 거듭하여 사라셍 밀가루 대신에 밀가루가 사용되었고 여러 내용물을 첨가해서 다양해졌다. 점차 이 요리는 크레프라 불리게 되었으며
달걀·소시지·육류·잼·초콜렛 등을 넣어서 만드는 전문 식당에서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간혹 프랑스 요리를 잘 아는 사람 중에서도 크레프를 후식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크레프는
후식으로 먹는 것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식사로 먹을 수 있으며 ‘슈제트 크레프’처럼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음식이 보잘것없고 대중적인 기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