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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6개월 격론 ‘금융산업법’ 당론 확정…‘노심’과 유사한 ‘분리 대응안’ 가닥
의원 입법 개정안이 나온 지 거의 6개월 만에, 정부안이 나온 지도 거의 5개월 만에 진통을 겪고
여당이 당론을 확정한 한 법률 개정안이 있다. 약칭 ‘금산법’으로 더 잘 알려진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금융 감독자 같은 금융 전문가나 살필 지극히 전문적인 이 법률이 지난 5~6개월 동안 일반인에게도 회자될 만큼 정·재계를 요동하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 법의 표적 대상이 삼성이기 때문일까.
여당 수뇌부가 ‘노심’을 받아들인 것일까. 분리대응안은 이미 지난 10월 청와대가 삼성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안이다. 이 안의 골자는 삼성카드가 가진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가운데 법을 위반한 5% 초과분은 처분하게 하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 가운데 5% 초과분은 의결권만 제한하게 하는 안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과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주식 취득 시점이 이 법 24조가 제정 발효된 1997년 3월 이전이냐 이후이냐를 따져 각각 다른 제재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삼성생명의 경우 법 제정 이후에 사들인 지분까지 포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삼성생명 건도 취득 시점에 따라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풀어야 할 기술적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성카드의 초과분 해소 방법을 무엇으로 할지에 따라 삼성은 사뭇 다른 영향을 받는다. 자진해 해소하지 않을 때 어떤 제재를 가할지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의 경우도 의결권 제한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지에 따라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가령 스물여섯 가지에 이른다는 주주 권리 가운데 단순히 의결권만 제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계안 의원이 주장하듯 신주인수권과 배당 같은 다른 권리로 제한을 확대할 것인지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여당에서 금산법 개정안은 6개월 가까이 이른바 원칙론과 현실론을 오가는 시계추식 행보를 보이며 끝없이 충돌해 왔다. 지난 6월1일 나온 박영선 의원 대표 발의안과 가까운, 두 회사 모두 초과분을 매각하게 하는 일괄 해소안과 두 회사에 다른 제재를 가하자는 분리 대응안, 그리고 재정경제부 발의로 지난 7월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이 시차를 두고 핑퐁식 접전을 벌여 왔다.
의견 차이 커 의무 아닌 ‘권고’로 매듭
정부안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초과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고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초과 보유 지분에만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정부안은 세 안 가운데 가장 미약한, 삼성이 보기에는 가장 유리한 안이다. 법 위반자 삼성에 면죄부만 주었다는 거센 반발을 부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여당 지도부는 그동안 몇 차례 금산법에 대한 당론 결정을 시도했다가 번번이 좌절했다. 이 사안에 관해 당내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어 도저히 타협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11월8일 외부 전문가를 불러 공청회를 열었지만 이들에게서도 극명한 시각차를 확인했을 뿐이다. 법 위반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매각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원칙론과 법 제정 이전에 취득한 삼성생명은 물론 삼성카드에 대한 의결권 제한도 지나치다는 제재 불가론이 격렬하게 대치했던 것이다. 여당 지도부는 11월21일 금산법 관련 상임위인 재경위·정무위 의원 15명이 참석한 정책 소의총을 열어 최종 조율을 시도했지만 여기서도 접점은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개혁파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안은 실종된 듯이 보였지만, 정부안은 의총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김혁규·김종률·오제세 의원 등이 정부안 사수에 나섰던 것이다. 특히 재경위 소속인 김종률 의원은 “이 사안을 당의 개혁성과 정체성 문제로 비화시키는것은 잘못이다”라며 정부안과 다른 별도안(분리 대응안)을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까지 주장했다. 보수 성향의 경제 관료 출신이나 친기업 성향 의원들이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기존 관측을 확인시킨 것이다. 일괄 해소안을 지지했던 한 의원은 “의총장에서 정부안 지지 목소리가 거세 이것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선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정부안보다 분리 대응안이 몇걸음 나간 진전된 대안인 것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당론 없는 한나라당, 여당 안에는 반대
결국 11월22일 고위정책회의를 거쳐 여당 지도부가 반발을 무릅쓰고 단일안(분리 대응안)을 24일 정책 의총에 상정한 것은 이런 당내 사정을 감안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분리대응론이 양극단으로 갈라진 당내 의견을 아우를 현실적 대안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상황 인식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재벌이 계열 금융사의 고객 돈을 총수의 지배력을 유지·강화하는 데 쓰는 것을 막는다는 금산법 24조 제정 취지를 살리면서도 기업에 미치는 부담을 줄이고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한 현실적 측면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산법 당론을 결정한 의총은 2시간 만에 전체 의원 1백44명 가운데 87명이 참석해 박수로 끝났다. 예상과 달리 큰 마찰 없이 봉합된 것이다. 정세균 의장 겸 원내대표가 ‘입법 가능성을 높이고 우리 당의 기존 원칙을 현실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분리대응론을 당론으로 채택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지만, 어느 쪽을 지지하는 의원이든 간에 더 이상 결론을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산법이 여당의 당론대로 귀결될지는 불투명하다. 최종 입법이 성사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박수 치고 끝냈지만 여당에서조차 벌써부터 ‘반란표’가 나오리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일단 공은 소관 상임위인 재경위로 넘어갔다. 현재 재경위원은 25명인데, 열린우리당 12명, 한나라당 10명, 민주당`민노당`무소속 의원이 각각 1명씩의 분포다. 전체 회의에서 뒤집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소관 상임위 의견이 존중된다는 점에서 재경위가 1차 격전지가 될 것은 틀림없다. 이르면 11월30일부터 재경위 금융및 경제법안 심사 소위에서 집중 논의가 이루어지겠지만, 금산법의 향방은 그야말로 예측 불허라는 것이 열린우리당 한 의원의 정세 판단이다.
무엇보다 제1 야당인 한나라당은 금산법 당론을 정하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여당의 분리대응론을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혜훈 제3정조위원장(재경위)은 "금산법 24를 아예 폐지하거나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백보 양보해도 정부안을 통과시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정부안이 낫지만, 분리 대응안도 받아들일만 하다'고 보는 이종구 의원 같은 재경위원도 있지만, 최대 관문인 재경위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재경부가 여당 아닌 야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경위 심의 과정이 ‘여 대 야·정' 대립 구도가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열린우리당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과 정반대 지형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미 여당 당론이 결정된 11월24일 민노당은 “분리대응론은 법안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삼성의 불법적 행위를 합법화하고 면죄부를 주었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노당은 심상정 의원 대표 발의로 박영선 의원안보다 더 강력한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여당은 당론을 끌어내는 예비 게임에서도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정작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연내에 반드시 입법을 성사시키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지만, 야당은 결코 호의적이 아니다. 게다가 삼성은 연내 입법 저지에 총력전을 벌일 태세다. 이런 정치 지형 탓일까. 금산법 통과를 위한 이른바 '바터론'도 등장한다. 여당이 한나라당이 통과를 강력히 희망하는 법률안 등과 금산법을 맞바꾸는 선택을 하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