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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고소 취하로 '급한 불' 껐지만, 공정위 '독점규제법 위반' 평결은 남아

 
‘얼마면 돼?’ 마이크로소프트가 또 돈으로 해결하려고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11월11일  윈도XP에 메신저를 끼워 팔아 공정거래 질서를 저해했다고 2001년 4월 자사를 고소한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현금 1천만 달러를 포함해 총 3천만 달러를 주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다음은 100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도 거두어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달에도 리얼네트웍스라는 미디어 플레이어 개발 업체에 7억6천만 달러를 주고 고소를 취하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불공정 경쟁 행위를 징벌하겠다고 나선 국내외 업체들이 잇달아 잇속만 챙기고 물러나자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서버 업체 디디오넷의 이광철 기술영업그룹장은 “개별 업체들이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버릇을 고칠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소인인 다음이 공정위 신고를 취소했다고 하더라도 공정위 심판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독점규제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평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심사관 자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이 황 서기관은 “사안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검토해야 할 자료와 변수가 많아 당초 예상보다 늦어졌으나 이제 심사가 끝나고 최종 결정만 남았으므로 이르면 11월 안에 평결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정위 판결은 법원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공정위는 오디오·비디오 재생 소프트웨어인 미디어플레이어·미디어 서버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소프트웨어인 메신저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했느냐를 판단한다. 공정위가 마이크로소프트가 불공정 경쟁 행위를 저질렀다고 최종 판단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정 조처와 함께 천문학적인 벌금을 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국내외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점유율 99%에 이르는 운영체제(OS) 윈도에다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끼워 파는 방식으로 국내외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했다’고 비판한다. 윈도 안에 인터넷 브라우저(익스플로러)·윈도 미디어 플레이어(WMP)·윈도 미디어 서버(WMS)·메신저(MSN) 프로그램을 집어넣어 패키지 형태로 팔다 보니 이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한 업체들이 시장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데스크톱이나 서버 운영 체제인 윈도를 구입하면 미디어 서비스 소프트웨어가 이미 깔려 있으므로 따로 돈을 주고 관련 프로그램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악의 제국이라고 표현한다. 황제 시스가 제국에 거역하는 별을 통째로 죽음의 별 ‘네메시스’로 날려버리듯 빌 게이츠는 윈도를 내세워 경쟁 업체들을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대 윈도에 자사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아 ‘내비게이터’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을 선점한 네스케이프 사를 궤멸한 적이 있다.

‘끼워 팔기’ 인정되면 천문학적 벌금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끼워 팔기 전략을 미디어 플레이어와 미디어 서버·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으로 확장했다. 미디어 플레이어는 컴퓨터에서 멀티 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통합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디지털 콘텐츠 검색 기능과 미디어 제작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또 모바일 기기나 홈 네트워크 시스템에 탑재될 핵심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미디어 플레이어와 미디어 서버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자 끼워 팔기라는 전가의 보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다.

 
국내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끼워 팔기의 위력은 엄청나다. 경쟁 업체들이 아무리 좋은 미디어 프로그램을 출시해도 시장에서 붙어보지도 못하고 패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93%를, 메신저 시장에서 4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리얼네트웍스라는 미디어 플레이어 개발업체가 2003년 12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에 미디어 플레이어를 끼워 팔아 소비자의 디지털 미디어 선택권을 제한해 손실을 입혔다’며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했다.

국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저항하는 선봉장으로 나선 곳은 다음커뮤니케이션. 다음은 2001년 4월 인스턴트 메신저를 윈도XP에 끼워 판 마이크로소프트를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하고 100억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는 공정위가 악의 제국 마이크로소프트를 징계하는 제다이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황 서기관은 “조만간 최종 평결이 나올 것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위법 평결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끼워 팔기는 독점규제법 23조 1항 제3호에 ‘거래강제행위’로 규정되어 금지되고 있다. 주 상품과 부 상품이 결합한 패키지 제품의 경우 주 상품의 독점력이 부 상품으로 이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국내 경제법 전문가 김 아무개씨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끼워 팔기 전략을 통해 시장 봉쇄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번 공정위 평결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시정 조처를 지시할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시장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 팔기’ 전략에 철퇴가 내려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MS측 “독점적 지위 누리지 않는다” 항변

관건은 처벌 수위다. 미디어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디디오넷의 이광철 이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S에서 미디어 플레이어·메신저·미디어 서버 기술을 떼어 시장 가격으로 팔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럽위원회는 비슷한 소송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지난해 3월 통신 프로토콜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벌금 4억9천7백만 유로(6억1천3백만 달러)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미디어 플레이어를 윈도에서 분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마이크로소프트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이 1998년 12월 유럽연합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스크톱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서버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자행하고 있다’고 고소하면서 시작되었다. 2001년 8월에는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에까지 조사가 확대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주장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 최대 법무 법인인 김&장을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우고,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한 자문단을 운영하며 공정위와 법률 논쟁을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디어 플레이어나 서버·메신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지 않으므로 공정위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에는 곰플레이어라는 탄탄한 시장 2위 제품이 존재하고,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메신저 프로그램인 MSN이 SK네트웍스의 네이트온에 밀려 시장 2위라는 것이다. 이상승 교수는 “국내 시장 현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면 경쟁 봉쇄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는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와  기술을 공유하고 경쟁 업체 제품들을 윈도 패키지에 포함하겠다는 타협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은 기술 종속을 염려하고 윈도 영향권에 편입될 것을 꺼려 반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공정위 평결이 임박하자 10월2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분기 보고서에서 ‘(한국 공정위가 한국에서 판매되는 윈도의 코드 제거나 한국 시장에 맞추어 특화한 윈도 재설계를 요구하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새 윈도 버전 출시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네티즌들은 ‘윈도 철수론’을 협박 행위라고 보아 인터넷 공간에서 ‘반 마이크로소프트 정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사업상 위험 요소를 명시한 것’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철수’를 부인하지 않아 논란이 증폭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만한 태도에 분개한 소비자들은 윈도 경쟁 제품인 ‘리눅스’를 전면 도입하자는 견해까지 내세운다.

 
미국 법원이 2000년 ‘셔먼 반독점법 위반 행위로 마이크로소프트를 2개 기업으로 분할하라’고 판결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본사를 캐나다로 옮기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미국 법무부와 극적으로 합의해 파국을 피해 갔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공정위 전원 회의에서 불리한 평결을 받더라도 다음 사례처럼 이해 당사자들과 합의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 시장에 10억 달러 이상 투자했고 해마다 1억 달러가 넘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 시장에서 ‘유아독존’이라는 시장 전략을 버리고 타협과 공생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생존 조건에 적응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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