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뒤늦게 소송 대열 합류하자 음모론 ‘모락모락’
조선일보가 7월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이 위헌이라며 지난 9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냈다. 48개 조항 가운데 절반이 넘는 29개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언론운동 단체와 일부 학자, 법조인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16일에는 언론개혁국민행동이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신문법은 합헌’이라는 주제로 조선의 위헌
주장을 반박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왜 하필이면 지금 신문법
위헌 소송을 냈느냐에 의문점을 던진다. 신문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지난 2월 18일 정인봉 변호사와 환경건설일보 강병진 대표이사가 처음 제기했고,
이어 동아일보가 지난 3월23일 같은 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조선일보는 ‘법이 통과된 직후 헌법소원을 내기로 방침을 정하고, 지난 3월 변호사 선임을 거쳐
지속적으로 준비해 왔다’고 말한다. 언론법 관련 판례와 언론학계의 학설 등 방대한 분량의 소송 자료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소송
시점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일보가 제출한 헌법소원 이유 보충서는 200자 원고지 1천1백50장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헌법 소원 제출 시점을
설명하는 다른 해석이 하나 있다. 5월 29일~6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세계신문협회(WAN) 서울총회가 열렸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매일경제신문 회장)가 주최한 국제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 개빈 오라일리 WAN 회장(당시는 회장대행)이 개회식 환영사에서 조중동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 “준비 기간 길었을 뿐”
신문법을 직접 본 적도 없는 오라일리
회장이 “한국의 신문법은 신문 발행인과 편집인의 권한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이며 신문 시장 점유율을 줄이려고 하는 신문법은 (일부 신문의)
지나친 영향력에 대처하는 방식으론 현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개회식 직후 열린 세계편집인포럼과 이해찬 국무총리와의 간담회 때도
신문법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신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라일리
회장의 발언을 대서 특필했다. 오라일리 회장의 발언은 국회 대정부질문 자료에도 오를 만큼 영향력이 컸다. 조선일보가 헌소를 제기한 사실을 4개
면을 증면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지난 6월10일,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자료에서 최근 열린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개빈 오라일리 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 권력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대한민국은 언론 탄압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신문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만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부는 이들 법의 시행령 제정을 유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6월15일 당
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에 독소 조항이 있다”라며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헌소 제기 → 오라일리 회장 발언 → 보수 신문 대서특필
→ 조선일보 헌소 제기 → 한나라당 법 개정 추진’이라는 흐름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조선일보가 헌법소원 제기 시점을 6월로 잡은
이유가 한나라당의 법 개정 약속을 끌어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는 분석이다. 신문법에 대한 보수의 총반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