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일의 책] <천하국가>/‘역사공동체’ 개념 본격 전개
지난해 초 고구려사 문제로 시끄러울 때다. ‘고구려를 중국에 빼앗길 수 없다’며 사회 전체를 달뜨게 하던 주장들과는 좀 다른 목소리를 찾다가 서강대 사학과 김한규 교수(55)를 만났다. 그는 마침 <요동사>(문학과지성사)라는 책을 출간하려던 참이었다.
그 책에서 그는 요동, 즉 지금의 만주 지역 역사를 중국사나 한국사에서 떼어내 독립된 역사로 서술했다.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것이 국가나 민족과 다른 ‘역사 공동체’라는 개념이었다. 요동 지역은 중국이나 한국과는 다른 생활 방식과 지역적 전통을 공유한 별도의 역사공동체였고, 고조선·고구려·발해뿐 아니라 요·금·원(몽골)·청이 요동 역사공동체에서 발원한 나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시도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중국의 주장과 ‘고구려는 한민족의 나라’라는 한국의 주장 모두를 뒤엎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한국이나 중국과 별개의 국가였다”(<시사저널> 제745호)는 그의 주장이 소개된 뒤 소동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김한규 교수는 독특한 학자다. 그의 전공은 중국 고대사이지만, 그의 관심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중국 고대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 주제는 지난 30년 동안 공간과 시간 양면에서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고대 중국적 세계질서 연구>(1982년) <고대 동아시아 막부 체제 연구>(1997년) <한중관계사>(1999년) <티베트와 중국>(2000년)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2003년) <요동사>(2004년) 등에서 그의 관심사가 엿보인다. 그가 다시 책을 썼다. <천하국가>(소나무). 870쪽짜리 두툼한 이 책 역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통 시대 동아시아의 세계 질서를 다룬다. 아울러 역사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중국과 변강의 관계를 추적해온 김한규 역사학이 중간 결산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이번에는 중국 학계가 불편해 할
듯
<천하국가>에서 김교수는 중국(사)를 철저히 해체해야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역사뿐 아니라 전통 시대 동아시아 역사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관심은 요동과 티베트를 넘어, ‘초원유목 역사공동체’ ‘서역 역사공동체’ ‘강저(羌?) 역사공동체’ ‘만월(蠻越)
역사공동체’ ‘대만 역사공동체’ 등으로 확장된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역사공동체뿐 아니라 수많은 변강 역사공동체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각각의 역사 공동체는 고유한 지역·문화·역사적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체한 후 살펴보면, 중국(역사공동체)은 황하 이남 양쯔강 이북의
이른바 중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책은, 국내 국사학계를 공분시켰던 지난해 책과 달리, 중국 역사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