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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교과서 검정보다 그 교과서를 만드는 역사 인식이 문제이다. 나는 역사를 먼저 풍경으로 보자는 말을 잘한다. 풍경에는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지형 밑에 수맥도 있고 광맥도 있다. 풍경도 보기 전에 수맥으로서의 역사 또는 광맥으로서의 역사를 앞세우면, 올바른 역사 읽기가 곤란해진다. 한·일 관계사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많은 가지가 모여서 줄기가 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인식하는 일본의 근·현대사 줄기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줄기를 이루는 많은 가지에는 훌륭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도 있다.

2. 한마디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논쟁과 연관된 한국과 일본의 접근법의 차이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소유권과 관련된 무주물 선점의 논리가 일본 것이다. 한국은 근대적인 소유권 개념이 일천했다. 더구나 지난 세기까지 바다 밖으로는 사람들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어부들 가운데 독도 근해에 간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마는 그런 기록은 남기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 시마네의 어부들은 출어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바탕 삼아 다케시마를 시마네의 땅으로 고시한 것이 1905년,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그 해였다. 나라 전체를 삼킬 때, 독도를 삼키는 수속은 어려움이 없었다. 독도는 영토 문제이기보다 역사의 문제이다. 나는 독도 문제가 한·일 양국이 새 시대를 열기로 한 바로 그 순간 큰 문제가 됐던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조인식은 예정 시간을  몇 시간이나 넘겨 이루어졌는데, 그 늦어진 이유가 바로 일본측이  ‘독도를 포함한’ 미해결 문제를 외교 경로를 통해 협의해 간다는 문안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논란과 진통 끝에 조인식이 겨우 열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40년 전 새로운 한·일 관계가 열리는 첫날의 광경이었다. 독도 문제가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그 문제가 40년의 친선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일러준다. 40년 전보다 더 어린아이 같은 언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3. 한·일 양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양국 지도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정치 지도자는 ‘오늘’과 ‘국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내일’과 ‘이웃’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답답하니까 아예 주변 국가에 ‘반(半) 투표권’을 주면 어떨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본다. 그렇게 되면, 이웃 나라의 ‘표’를 의식하게 될 테고, 궁극적으로는 ‘주권 국가’ 운운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은 삼가지 않겠는가. 4.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객관적 조건은 충분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한 상임이사국이냐에 대해, 일본 스스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데 있다. 일본은 상임이사국이 되기 전과 상임이사국이 된 뒤, 뭐가 달라지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5. 한·일 양국 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에서는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한·일 관계에서 정치를 좀 후퇴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도 급이 올라가면 ‘겨루기’보다 ‘어울리기’ 명수가 우뚝해 보일 것이다. 그런 명수가 이끄는 한·일 관계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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