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대 총학생회, 횡령 의혹·학생회비 자율 납부로 ‘곤경’

 
“지금 보시는 이 배구공이 바로 새내기 체육대회 때 산 그 공입니다.” 지난 6월9일 저녁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418기념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있었다. 이 날 공청회의 핵심은  총학이 쓴 학생회비 중간 결산 내역이었다. 6월4일 고려대 법대 재학생 송 아무개씨(25)가 총학생회의의 학생회비 횡령·배임 혐의를 수사해 달라고 경찰에 진정한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총학이 영수증을 보관하지 않고 관리가 소홀하며, 공개된 지출 내역에 의문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총학생회는 공청회에서 문제가 된 농구공과 배구공·휘슬 등을 공개해 성능과 가격을 알려주며 결백함을 역설했다. 이 날 총학은 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럭비공 2만5천원’ ‘과일 4천원’ 식으로 일일이 공개했다. 7시30분께 시작한 공청회는 밤 12시 가까이에 끝났다.

지금 고려대 총학생회가 겪고 있는 곤욕은, 크게 보면 지난 5월2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고려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 파행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명예박사 수여 반대 시위를 주최한 총학에 대해 고려대 본부와 본부를 지지하는 고대생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고려대 본부는 시위 주동자를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고대 학생들은 연서를 받아 총학 탄핵안을 발의했다. 5월19일 고려대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되고, 학외 여론을 의식한 고려대 본부가 시위 학생 징계 방침을 철회하면서 총학은 한 고비를 넘겼다. 

공청회 결과는 학생회측 ‘판정승’

이번 학생회비 파문은 ‘이건희 명예 박사’ 사태 후폭풍 제2 라운드’다. 고려대 본부는 6월2일 공고를 내고 2005년 2학기부터 학생회비 자율납부제를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그동안 학생회비는 등록금과 함께 일괄 징수했는데 앞으로는 학생회비를 내고 싶은 사람만 따로 내면 되는 것이다. 고려대 총학(38대) 집행위원장 유지훈씨는 “ 자율납부제 문제는 이미 올해 3월 대학 본부가 강행하지 않기로 하고 접은 사안인데 이건희 명예 박사 사태 이후 태도를 바꿨다. 학교측이 학생 자치 활동의 힘을 빼려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홍보실은 “학생회비를 등록금과 분리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많았다”라고 자율납부제 시행 이유를 설명했다.

자율납부제가 시행되면 납부율이 50%를 채 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학생회비 횡령’이라는 이름으로 경찰 진정까지 간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고대생 송씨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소식을 몇몇 언론과 포털 뉴스는 ‘고대 총학 횡령 의혹 수사’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학생회 신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막상 진정서 내용을 보면 뚜렷한 근거가 없다. 서울 성북경찰서 경제2팀 담당 형사는 “현재 수사는 진정서 내용을 검토하는 수준이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이 없어 고대 총학생회를 직접 소환하기는 아직 이르다. 최초 진정자 송씨를 다시 만나 보강된 자료를 얻은 후에야 수사가 진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학생회비 회계 문제를 둘러싼 진실은 경찰의 몫으로 넘어갔지만, 적어도 공청회 현장에서는 총학측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50여명 가운데 3~4명이 총학이 잘못했다며 끈질기게 공격했지만,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서 떠도는 풍문에 의거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총학도 가결산 내역 숫자를 틀리는 등 허점을 보였지만 ‘횡령·배임’이라는 거창한 죄를 지었다는 근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작년 영수증이 없는 이유에 대해 총학은 “학생회는 일반 회사와 달리 1년 단위로 모든 업무를 청산한다. 전학대회에서 결산 내역을 보고하고 집행부가 퇴진하면 영수증을 보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 임원은 “상식적으로 전년도 영수증을 보관하는 경우는 드물다. 영수증 보관 기간을 늘리자는 제안을 할 수는 있지만 작년 영수증이 없다며 횡령·배임 어쩌고 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