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오늘] 국교정상화 30주년 계기로 ‘원죄’ 집중 조명
1995년 6월22일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은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10년 전 <시사저널>은 한일협정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일본의 와타나베 전 외무장관이
‘한일합방은 원만히 체결되었다’는 망언을 뻔뻔스레 늘어놓을 때였다.
한일협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협정 전문에 ‘식민지 청산’에 대한 내용이 한 군데도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라고 자국민에게 설명하고, ‘3억 달러 가치의
일본국 생산물 및 일본 국민 용역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 상당의 생산물과 용역을 조달함에 있어 차관을 제공한다’는 선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돈의 성격도 잘못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라고 설명하면서. 또한 협정에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해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조항을 넣으면서 이후 위안부, 징병·징용 피해자 등 피해자 배상 요구를 막아버리는 후유증을 낳게 되었다.
한일협정의 기본 골격은 1962년 10월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부터 마련되었다. 군부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이 권력의 정치·경제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돌파구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서둘렀다. 일본이 법적 해결을 주장하며 망언을
되풀이하는데, 한일협정이 그 씨앗을 뿌린 셈이 되어버렸다.
<시사저널> 제296호
커버 스토리는 3김의 대리전이 된 1995년 6월 지방 선거를 다루었다. JP가 탈당한 민자당의 YS는 세대교체론을, DJ는 지역등권론을,
JP는 내각제를 각각 지지 논리로 내세웠다.
미디어 기사로는 내외통신 문제를 다루었다. 내외통신은 안기부 산하에 있던 북한 뉴스 전문 통신사였다. 안기부가 내외통신을 통해
입맛에 맞는 북한 뉴스를 흘리고, 다른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는 대량 오보 시스템을 고발했다. 기사에서 내외통신을 안기부 산하에서 끌어내
독립적인 통신사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내외통신은 1998년 12월 연합뉴스에 흡수,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