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주 공간 군사기지화 본격 추진…“군비 경쟁 부추기는 도발” 비판
이르면 오는 6월 미국은 우주를 사실상 군사 기지화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는 국가 안보 지침을 발표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름으로 나오게 될 새 국가 안보 지침의 핵심은, 우주에 방어용 무기뿐만 아니라 공격용 무기를 배치한다는 점이다. 1997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만 해도 대단히 제한적이면서도 방어적 성격의 우주 개발을 보장한 국가 안보 지침이 나왔지만, 부시 행정부가 곧 발표할 새 지침은
공세적 목적의 무기 배치에 더 큰 비중이 실렸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확실히 다르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기어코 우주 무기화 정책을 강행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주에서의 무기 경쟁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게 번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에 소재한 저명한 군사 전문 싱크 탱크인 국방정보센터의 테레사 히친스 소장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 중인 새 우주 정책의 골간은 역대 미국 행정부가 그토록 꺼려온 우주의 무기화 반대 정책을 뒤엎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18일 뉴욕 타임스가 최초 보도한 이후 다른 주요 언론의 후속 보도를 통해 윤곽이 드러난 새 국가
안보 지침은 미 공군이 최종 마무리중이다. 미 공군 당국은 새 안보 지침의 핵심은 ‘자유로운 우주 공간을 확보하자는 것이지, 우주의 군사화와는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백악관도 새 지침의 목적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미국 위성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우주의 군사
기지화 비판을 일축했다.
그러나 미 공군 우주사령부 책임자인 랜스 로드 장군은 최근 미국 의회에 출석해 “새 국가안보 지침을 통해
미국은 우주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라고 증언해 이 지침의 목적이 우주의 군사
기지화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국립 해군대학의 데이빗 하드스티 교수는 “우주의 군사 기지화가 미 공군의 새 전략으로 굳어진 것이다”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러시아·중국 등 ‘맞대응’ 태세
사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1기 때
미사일 요격 체제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냉전 시절 인 1972년 옛소련과 맺은 요격미사일 금지조약(ABM)을 파기했다. 이 계획은 지금까지
1천억 달러 이상의 개발비를 소비했으나 기술적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망이 지상에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우주 공간으로부터 진격해오는 적의 탄도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면 공군이 추진 중인 계획은 그 반대다. 즉 우주를 군사 기지화해
여기서 각종 무기를 동원해 지상 목표물을 분쇄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술적으로나 소요 비용 면에서 미사일방어망 체제를 훨씬 능가한다.
현재 미 공군이 추진 중인 우주의 군사 기지화 전략의 핵심은 우주 공간에 500kg의 탄약을
실은 정밀 유도 무기를 장착한 군사위성의 배치를 골자로 한 ‘범지구적 타격’ (Global Strike) 전략이다. 공군은 공격용 첨단 무기를
우주 공간에 배치해 전세계 어느 지역이건 적의 지휘부나 미사일 기지를 단 45분만에 초토화하겠다는 것이다. 로드 장군은 “공군은 장차 우주
전력을 강화하는 사업에서 이런 무기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최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새로운 우주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 등 아직도 넘어야 할 기술적 난제가
많다고 본다. 이 때문에 공군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우주 무기화 전략도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놓여 있는 요격 미사일
체계의 재판이 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같은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듯 미 공군은
지난 4월 우주 공간에서 적의 첩보 위성이나 통신 위성을 궤멸시킬 수 있는 첨단 군사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1기당 8천만 달러에
달하는, XSS-11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험용 위성은 록히드 마틴 사가 개발한 것으로 무게는 약 140kg이고, 크기는 가정용 접시닦기
기계만한 극소형 위성이다.
공군 당국은 이 위성이 우주에 떠돌아 다니는 고장 난 위성 등의 고장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찾기 위한 조사용 목적의
위성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것 같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우주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XSS-11 위성의 목적이 기본적으로
위성을 요격하기 위한 군사적 임무를 띤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미 공군은 XSS-11 외에도, 우주 공간에서 텅스텐, 티타늄 또는 우라늄으로 만든 실린더를 시속
11,520km이란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상의 목표를 향해 발사해 소형 핵폭탄의 위력에 맞먹는 폭발력을 낼 무기도 개발 중이다. 또 우주 위성에
장착한 거대한 반사 거울을 통해 고열의 레이저를 발사해 지상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한 무기 개발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책임자인 트레이 오버리그 장군의 지적대로 이런 무기를 개발해 실전에 배치하기까지 넘어야 할 기술적 난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기술적 난관 외에도 우주 무기 개발에 드는 소요 비용도 상상을 초월한다.
우주 전문가인 데이빗 라이트 박사는 최근 발표한 한 논문에서 적의 탄도 미사일 1기를 요격하려면 우주 공간에 최소 1천개의 요격 위성을 배치해야
하며, 그 비용만 해도 최소 2백억 달러에서 최대 1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미국은 현재 군사 목적으로 매년 평균 10~12개의 대형 로켓을 발사하지만 요격 위성을 우주 공간에 띄우려면 수십, 수백 개의 로켓을 발사해야
한다. 저명한 우주무기 전문가인 리처드 가윈 씨는 최근 한 전기공학 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는 데 60만
달러가 든다면, 우주 공간에서 단 1회 레이저를 이용해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최소 1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기술적 문제와 천문학적인 비용 외에도 넘어야 할 거대한 장애물은 또 있다. 우선 미국 내 과학자들과 야당인
민주당측의 거센 반발이 그것이다. 의회쪽에서는 민주당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이 28명의 동료 의원들과 함께, 첩보 위성을 제외한 모든 무기의 우주
배치를 금지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 하원에 제출한 상태다. 우주의 무기화를 견제하기 위한 저명한 과학자들의 감시 기구인 ‘우려스러운 과학자
연합회’측도 이제는 유엔이 적극 나서 우주의 군사 기지화를 금지하는 조약을 만들어야 한다며 적극 촉구하고 나섰다.
전 세계, 특히 러시아와 중국, 나아가 미국의 우방인 유럽연합의 반발도 거세다.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고위
관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최근 회견에서 “미국이 기어코 우주 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면 우리도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사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우주 배치를 금지하기 위해 1967년에 성립된 외계우주조약(OST)의 가입국이기 때문에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중국과 소련은 2003년 유엔 군축회의를 통해 우주의 군사 기지화에 반대하는 국제조약을
맺자고 공동 제안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우주의 군사 기지화를 강행할 경우, 자위적 차원에서 유사 조치를 취할 것이
확실하다. 이래저래 세계는 부시 행정부의 ‘안보 결벽증’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과거 냉전 시절의 치열한 핵 경쟁에 버금가는 우주의 군비
경쟁을 좋든 싫든 목도해야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있는 민간 군축 단체인 군축협회의 대릴 킴볼 사무총장은 “부시 행정부의 새 우주 정책은 불필요하고도 도발적인 군사 체제이며,
오히려 다른 나라들의 군비 경쟁을 부추겨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