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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빈 건물을 작업실로 쓰는 ‘스 운동’ 활발…새 대안 공동체로 각광

 
“자, 가자!” 물감이 묻은 낡은 작업복 차림인 SP38이 한손에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두루마리처럼 말아들고, 다른 한손에는 풀통을 든 채 작업실을 나서며 외쳤다. 일단의 작가들이 스프레이 몇 개와 사다리를 챙겨 따라 나섰다. 잠시 후 그들은 철망으로 벽을 만들어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공터 입구에 섰다. ‘일반인 접근 불가’라는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는 철망 대문은 쇠사슬로 굳게 닫혀 있었다.

이들은 철문 아래 틈새에 몸을 밀어넣어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맞은편 담벼락으로 성큼 다가가 풀칠을 한 뒤 가지고 간 두루마리 그림을 펼치기 시작했다. 도배하듯 그림을 붙이는 작업은 20분도 지나지 않아 한편의 벽화로 탈바꿈했다. 누군가가 은색으로 거칠게 색칠되었던 담벼락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간단하게 꽃 몇 송이를 그려 넣었다. 일단의 작업은 이렇게 해서 끝났고, 몇 년간 방치되었던 공간은 예술가들의 즐거운 작업실이자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파리 시내 20여 곳에 둥지 틀어

 
지난 5월21일 프랑스 파리 동북부 벨빌에서는 이같은 도발적인 미술 작업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오프 스튜디오’ 행사였다. 빈 공간은 파리시가 수영장을 짓겠다고 건물을 사들여 철거한 뒤 7년째 방치해온 공간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버려진 공간이나 건물을 예술가들이 재활용하는 행위를 ‘예술 스쾃’이라고 한다. 특정 공간에 대해 소유권이나 거주권이 없는 예술가들이 그 공간을 점거해 예술 행위를 벌이거나, 예술 공간으로 변용하는 운동이다.

이 날 벽화 작업을 벌인 SP38은 지난 20년간 예술 스쾃을 몸으로 실천해온 작가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거리를 작업실로, 건물 벽을 캔버스 삼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왔다. 프랑스에서 정규 미술 학교를 다녔던 그는 학교 교육으로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끝에 예술 스쾃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다양한 부류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감성을 개발해 왔다. 회화는 물론 설치·조각·퍼포먼스·요리 등 그를 가로막는 장르는 없었다.

스쾃이란 ‘빈 공간 점거’를 뜻하는 말로, 오스트레일리아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자기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했다. 1835년 께부터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는 도시화 과정에서 오갈 데 없는 고단한 노동자들이 도심의 빈 공간을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삼아 눌러앉으면서, 스쾃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인 계급 투쟁을 위한 공간적 토대가 되었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각성과, 이에 따른 집단 행동이 스쾃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수많은 계급 투쟁 선언서가 스쾃에서 낭독되었고, 사회 투쟁의 거점이 되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는 주택 점거 운동의 대표자이다. 그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도덕성은 항상 우리에게 가르쳐 왔다.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를 가진 아비가 있다면, 그는 빵집에서 빵을 훔쳐서라도 아이를 먹여 살릴 자격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주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 집안의 가장은 비어 있는 공간을 점거할 권리가 있다.”

유럽에서 ‘68혁명’을 거치면서 스쾃은 커다란 변모를 겪었다. 무정부주의자·지식인·학생·예술가·망명가 등이 스쾃에 상주하며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실험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스쾃은 이들에게 인간답게 살고 자유롭게 살아갈 공동체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스쾃은 또 한번 변모했다. 이번에는 예술가들이 중심에 섰다. 예술 스쾃 운동가들은 프랑스의 제도 예술 지형을 혁명적으로 뒤엎는 도발을 감행했다. 현재까지 약 25년 역사를 지닌 예술 스쾃은 파리 시 전역에 약 20개에 이른다. 2002년 파리의 현대 예술 창작 사이트인 팔레 드 도쿄와 스쾃 예술가들이 공동 기획한 ‘예술과 스쾃’이라는 페스티벌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약 26개의 스쾃이 참여했다. 예술 스쾃은 독특한 개성과 표현 기법으로 프랑스 제도권 예술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파리 시 12구에 자리잡은 알터나시옹은 지난 5월 초 강제 철거 명령을 받았다. 1999년 약 20명의 예술가들이 점거한 이 공간은 파리 시의 대표적인 대안 예술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곳이다. 현재에도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 15명이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고, 예술 작업실 외에 음악 연습실·갤러리·음악 공연장이 운영되고 있다.

알터나시옹에 거주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실피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독일인. 벨기에·독일·프랑스 등지에서 스쾃을 경험하면서 스쾃 예술가들을 주제로 작업해 오고 있다. 드럼 연주자인 스키드도 알터나시옹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은 알제리, 모친은 튀니지 출신이다. 프랑스는 물론 알제리·튀니지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끌어안아 주지 않았다. 연습실을 찾던 도중 우연히 알터나시옹을 알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눌러 앉게 된 경우다.

역시 알터나시옹 식구인 프레드릭 아틀란은 초창기부터 예술 스쾃 형식으로 작업해온 작가이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스쾃을 통해 독학했다. 지금은 캔버스 작업은 물론 퍼포먼스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낡거나 버려진 건물을 캔버스 삼아 설치 미술을 겸한 대형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낡은 공간이지만 나에게 너무 자유로운 창작 공간이다. 누구의 간섭도 없다. 건물이 철거되면 내 작품도 사라지지만 그것조차 스쾃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알터나시옹은 예술가들 외에 시민단체나 이주 노동자를 위해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 5월18일부터 5월20일까지는 서울 목동예술인회관 스쾃을 전개해온 한국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설치 작업과 사진·영상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안해룡의 ‘침묵의 외침’ 사진·영상전이 열리기도 했다. 한국적 스쾃에 대한 프랑스 스쾃 예술가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로베르네의 집’은 시청이 사들여 관리

 
파리 중심부 퐁피두센터 뒤편에 자리 잡은 ‘로베르네의 집’ 또한 대표적인 예술 스쾃 공간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2000년에만 월 평균 4만명이 로베르네의 집을 방문했다고 추산하고 있다. 로베르네의 집은 파리 시에서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을 가진 현대 예술 공간으로 꼽힌다.

매일(월요일 제외) 오후 1시~7시 일반 시민에게 창작 공간을 개방해 사랑을 받았던 로베르네의 집은 지난 3월28일부터 잠시 문을 닫았다. 파리 시는 크레딧리오네 은행 소유인 이 건물을 사들여 보수한 뒤 2008년 2월 재개장할 예정이다. 그 사이 파리 경찰청이 안전을 이유로 일시 폐쇄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퍼진 예술 스쾃은 제도권 예술이 이루어내지 못한 실험적 성과를 내며 유럽 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공간 점거는 불법일지언정 그 공간에서의 예술 행위는 불법일 수 없다’가 스쾃 운동을 대표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에 기대어 스쾃 예술가들은 제도권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하고, 새 형태의 예술 공동체를 모색한다. 주거 공간과 창작 공간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삶의 대안’과 ‘예술의 대안’을 동시에 찾아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새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스쾃 알터나시옹은 무엇인가?
스쾃 알터나시옹은 인구 2만명인 파리 12구 피에르 브르당 거리에 있다. 원래 은행 소유였으나, 예술가들이 점거한 뒤로 시가 사들였다. 우리는 건물을 점거하던 1999년 9월 ‘예술 단체 알터나시옹 2119’를 결성했다. 예술의 사회적 연결 사슬을 만든다는 취지로 창작 공간뿐 아니라 전시장·공연장에 심지어 채식주의 식당, 어린이를 위한 연극·요가 교실도 있다.

알터나시옹의 운영 원칙은?
알터나시옹에는 사실 그 어떤 대표가 없다. 다만 역할과 책임을 나눠 맡을 뿐이다. 나도 전체 운영만 담당하고 있다. 스쾃 안에서는 기존 사회의 수직적 체계가 없다. 수평 분담만 있을 뿐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9시에 회의가 열리는데, 이것이 사실상 운영 총회다.

조직·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스쾃 안에는 무보수가 기본이다. 기성 사회의 경제 개념은 통용되지 않는다. 무형의 능력을 나누고, 교환하는 것이다. 다만 단체에 등록된 예술가의 경우 한달에 약 20유로(약 2만5천원)씩 회비를 내놓아 운영비에 충당한다.

최근 파리 시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았다는데.
지난 5월 초 서류를 통해 정식 통고를 받았다. 현재 파리 시와 대화하고 있다. 시측은 시 소유의 다른 공간을 제안했는데, 조형 예술가 10 여명만 작업실을 쓸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이어서 전체가 옮겨가기 부적당하다.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다른 곳으로 스쾃을 만들 계획이다.

그렇듯 어렵게 ‘점거’를 고집하는 이유는?
나는 개인적으로 기존 사회의 삶의 원리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매일 아침 기계처럼 일어나 회사 가서 일하고, 퇴근해 텔레비전 보다가 잠드는 생활로는 그 어떤 창조적 에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 삶을 타인이 결정하도록 방치했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스쾃 운동의 근본 동력이다. 스쾃에는 자율과 자유, 저항과 연대가 있으며, 이는 인류 모두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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