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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며칠 전, 한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쓴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대해 대부분의 토론자들이 보수·실용 노선이라고 말한 반면 이 당 소속의 정치인만은 유독 중도·개혁이라고 부득불 주장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한 토론자가 “보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수구 세력과는 다른 건전한 보수도 이 땅에서는 할일이 많다”라고 말할 때까지도 그는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정치 노선에 관한 논쟁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 집권 세력의 자기 인식 능력에 대해서다. 다른 사람 얼굴은 보아도 내 얼굴은 볼 수 없듯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에 대한 평가는 자신보다는 주변의 평가가 더 정확한 법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표방한다 해도 실력과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 된다. 한 존재의 정체성은 스스로의 실력과 행동으로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완수함으로써 주변의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예컨대 참여정부가 자신의 경제 정책이 진보적이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이를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구호, 기업자유도시 추진,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현정부의 경제 정책이 역대 정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라는 점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정부가 개혁의 성과를 과시하고 개혁 지향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분야는 국내 정치와 외교 안보 분야가 아닌가 싶다. 특히 최근 들어 참여정부는 외교 안보 분야에서 개혁적·자주적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과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그런가 하는 데에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를 들어보자.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터키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들이 국내에 있다”라고 일갈했다. 이런 친미파 때문에 자신이 지향하는 균형 외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대통령이 말하는 친미파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다. 경제계에도 있을 것이고, 학계에도 있을 것이며, 물론 정치 분야에도 상당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친미파란 외교통상부 내의 일부 외교관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노대통령 발언 이후 반기문 장관 등 외교부 관리들은 여러 언론 매체에 나와 ‘외교부 내에 국익을 해칠 만큼의 친미파는 없다’는 변명성 발언을 하고 있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외교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외교부가 균형 외교라는 새로운 외교 원칙 설정에서 소외된 것은 물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방해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면 과연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족이 되어야 할 일선 외교관조차 설득하지 못한 대통령이 ‘한·미 동맹만이 살 길’이라고 아우성치는 보수 세력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렇듯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온 국민이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균형 외교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말보다 행동 앞세운 ‘DJ식 외교’ 상기해야

사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외교다운 외교가 없었다. 미국 눈치 보고, 미국 비위 맞추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균형 외교로 궤도 수정을 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의미 있는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전임 김대중 정부의 외교 노력이다. 2000년 말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군부의 최고실력자가 백악관에 초대되며,  나아가 현직 미국 대통령을 평양 방문 일보 직전에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은 바로 그 해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비록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 모든 북·미 관계정상화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DJ의 외교 이니셔티브가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DJ는 ‘동북아 균형자’라는 멋들어진 수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자기가 부리는 외교관들이 새로운 외교 정책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북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외교적 변화를 우리 힘으로 이룰 뻔한 지점까지 갔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수사가 아니라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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