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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작가모임, 시·소설 등에서 성과 쏟아내…문학 교류는 초보 단계

 
소설가 방현석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베트남 하노이 시를 방문했다. 지난 10년간 서른 번이 넘게 다닌 곳이지만, 이번 방문은 그에게 특별했다. 그가 쓴 단편소설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베트남어판 출판기념식에 참석하는 길이었기 때문. 한국의 현대 문학 작품이 베트남어로 현지에서 출간된 것은 방씨의 소설이 처음이다.

두 편의 소설은 작가 방씨가 베트남을 수차 여행하면서 겪고 느낀 경험을 모티브로 한 작품. 방씨는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에 실린 단편 <존재의 형식>으로 2003년 황순원문학상과 오영수문학상을 동시에 받으며 문학적 절정기를 맞고 있다. 두 소설은 ‘문학 투사’였던 그가 지리멸렬한 1990년대를 우회하며 버틴 끝에 엮어 올린 성취였다. 방씨는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베트남작가모임) 회원이다.

1990년대 해외 여행이 자유화한 이후 작가들의 해외 체험이 늘어나면서 우리 문학의 외연도 확장되고 있다. 공지영 김인숙 오수연 유재현 등의 소설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해외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국을 배경으로 한 최근의 우리 문학 작품 가운데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작가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10여 년 전인 1994년 가을, 소설가 김남일씨는 홀로 베트남 여행길에 올랐다. 베트남이 목적지가 된 것 자체가 우연이었다. “개인적으로 지쳐 있을 때였다. 하루는 책을 보는데 ‘베트남은 한국인의 추억의 거울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와 박혔다. 그 길로 아무 생각 없이 짐을 쌌다.”

 
이 우연한 여행이 김씨와 그의 동료들을 변화시켰다. 짧은 여행 동안 ‘베트남은 전쟁 통에 손을 놓쳐버린 어린 누이와 같은 땅’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귀국 직후 동료 작가 20여명에게 엽서를 보냈다. 얼마 후 그는 최인석 김영현 김남일 김형수 이성아 방현석 씨 등을 이끌고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그들은 15박16일간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베트남 곳곳을 방문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현재 50명 이상으로 늘어난 회원들은 매년 한 차례씩 베트남 연대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베트남 문학과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소모임도 있다. 방현석 김남일 씨 등 몇몇은 베트남어를 서투르지 않게 구사한다.

물론 이전에도 베트남을 소재로 한 문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청룡·맹호 부대 등 한국군 31만 2천8백53명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들이 겪은 최대의 전쟁이었으니 베트남전은 한국 문학의 주요 소재였다.

국내 문인들에게 베트남 붐 불어닥쳐

송 영의 <선생과 황태자>, 조정래의 <청산댁>, 신상웅의 <심야의 정담>,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 전쟁>, 이상문의 <황색인>,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 주요 소설 작품. 송기원 김준태 김태수 김명인 신세훈 등 시인들도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직접 참전한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다. 그래서인지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했다는 허무주의적인 자의식을 드러내거나, 낭만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정치적 무의식으로 포장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한-베트남 수교(1992년)와 베트남작가모임 결성은 양국의 문학 교류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국내 문인들 사이에 한동안 베트남 붐이 불었다. 문학 평론가 고영직씨는 “식민지 체험과 분단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학적 정의의 문제를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믿음에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라고 분석했다. 고씨는 방현석 씨에 이어 베트남작가모임의 5대 회장을 맡고 있다.

 
베트남작가모임 회원들이 쏟아낸 문학적 성과는 크다. 고엽제 문제를 다룬 이대환씨의 소설 <슬로우 불릿>이 가장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이후 김남일씨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자미원에는 어떻게 가는가>와 <중급 베트남어 회화>를 썼다. 방현석씨는 두 편의 소설 외에 여행 에세이 <하노이에 별이 뜨다>를 발표했다.

시인들의 작품은 훨씬 많다. 김정환(<하노이·서울시편>), 김형수(<슬픈 열대-사이공 연가>), 이재무(<베트남에서 돌아온 P시인에게>), 이승철(<하미에서>), 이영진(<극작가 빅 투이에게>), 임동확(<베트남과 내 고향 사이의 거리>) 등이 베트남을 다룬 시편을 한국 문학의 대지 위에 심었다.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2000년 베트남 시인 바오닌이 방한한 이래 반레·휴틴·안득 등 베트남 작가들이 한국을 찾아 ‘내면의 교류’를 이어갔다. 소설 <전쟁의 슬픔>(바오닌), <그대 살아있다면>(반레)과 시집 <겨울편지>(휴틴)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한국을 방문했던 베트남 여성 작가 뚜이 마이는 경주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을 베트남에서 발표했다.

모임이 결성된 지 10년. 베트남작가모임은 인적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 학교에서 진행되는 한국 문학 커리큘럼에 강사를 파견할 계획도 그중의 하나다. 교류의 경험을 나누려는 단체도 생겨났다. 충북 민예총은 지난 4월 초 베트남 푸옌 성을 방문해 순회 공연 등 예술 교류를 하고 왔다. 울산 작가회의는 지난해 베트남 작가들을 초청해 자매 결연을 맺었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아직 한·베트남 문학 교류는 서로를 소개하고 이해하는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김남일씨는 “앞으로는 ‘원죄 의식’을 넘어 노동자 문제나 국제 결혼, 또는 개혁 개방 이후 드러나고 있는 베트남 사회의 모순 등도 조심스럽게 문학 소재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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