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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푸스데이 회원·협력자 모임 최초 공개

 
“제가 바로 오푸스데이 회원입니다. 어때요? 비밀 조직의 암살자 같은가요?” 지난 4월14일 서울에서 만난 박재형씨(43·전직 의사)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에서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광신도 ‘알비노’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는 현재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오푸스데이 회원이다.

라틴어로 ‘신의 사업‘이라는 뜻인 오푸스데이(opus dei)는 최근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28년에 설립된 카톨릭 내부 단체이지만 일반인들은 주로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비밀 결사 조직으로 이해한다. 전세계에서 8백만 부가 넘게 팔렸고 국내에서도 10주 연속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한 초대박 소설 <다빈치 코드>는 오푸스데이를 카톨릭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어둠의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은 오푸스데이 광신도인 알비노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를 암살하면서 시작한다.

 
최근 외신 보도는 교황 서거 이후 차기 교황 선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집단으로 오푸스데이를 지목하고 있다. 전세계에 8만 회원을 거느린 오푸스데이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막후에서 바티칸을 움직이는 실력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재형씨는 “오푸스데이는 비밀 단체가 아니라 카톨릭 안의 다양한 모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홈페이지도 있는 조직이 무슨 비밀 결사인가.  게다가 오푸스데이 소속 추기경은 2명밖에 없어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힘들다”라고 설명한다. 박씨에 따르면, 오푸스데이는 카톨릭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일상 생활과 일에서 하느님을 찾는’ 수양 단체다. 그는 “<다빈치 코드> 저자는 카톨릭을 공격하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 카톨릭의 전통에 충실한 우리 단체를 표적으로 삼았다”라고 말했다.

오푸스데이 조직은 신부-회원-협력자로 나뉜다. 회원은 ‘신부는 아니지만 신부 같은’ 경건한 삶을 산다. 회원 가운데 일부는 신앙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박재형씨 역시 결혼하지 않은 상근 회원이다. 협력자는 오푸스데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카톨릭 신도를 말한다. 전세계 8만여 회원 가운데 신부는 3천여 명이며, 협력자 숫자는 알 수 없다.

박씨가 처음 오푸스데이를 접한 것은 남미 페루에서 대학에 다닐 때였다고 한다. 평범한 카톨릭 신도였던 박씨는 오푸스데이를 통해 진정한 신앙을 깨닫고 ‘하느님의 사업‘에 인생을 바치게 되었다. 그는 1984년 6개월 간의 심사를 거쳐 오푸스데이 회원이 되었다. 이후 해마다 재심사를 받다가 1989년부터 종신 회원 자격을 얻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해 5년 남짓 의사 생활도 했던 박씨는 지금은 홍콩에서 오푸스데이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푸스데이 불모지

오푸스데이 홍콩 지부는 ‘오푸스데이 불모지’인 한국을 개척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신부나 회원을 파견한다. 마치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같다. 4월 중순에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박씨였다. 그는 한국에 와서 여러 신도들을 만나며 오푸스데이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4월14일 저녁 7시, 서울 관악구 한 빌라 7층에서 오푸스데이 협력자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에는 박재형씨 외에 전 서울대 법대 교수인 황적인씨(78), ○○ 법정위원회 책임연구원이자 법학박사인 서 아무개씨,  그리고 번역 일을 하는 카톨릭 신자 아무
개씨 등이 참석했다. 황적인 전 교수는 협력자 모임이 열린 빌라 빌딩의 소유주인데, 오푸스데이를 위해 건물 7층 전체를 내놓았다.

그는 “독일 유학 시절 오푸스데이 소속 신부님 덕분에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빌라 일부를 희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곳은 오푸스데이 집회 장소와 내빈의 숙소로 이용된다.

 
이 날 종교 행사는 <요한복음> 13장을 강독하며 시작했다. 여느 카톨릭 모임의 기도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강해 도중   박씨가 “<길> 518번을 보시면 성 호세마리아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며 인용하는 것이 특이했다. <길(The Way)>은 오푸스데이 창설자인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쓴 책이다. <길>은 오푸스데이 회원들에게 마치 성서처럼 소중히 여겨지는 책이다. 모두 9백99개의 문단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문단마다 번호가 매겨져 회원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도 <길>은 자세히 소개된다. 채찍으로 등을 치고 대못이 박힌 밸트를 입으며 몸을 학대하는 한 신도가 <길> 208번 ‘고통은 복되도다. 고통은 사랑받으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이 있다.

이에 대해 박재형 회원은 “나도 가끔은 그런 도구를 수행에 이용한다. 대못이 아니라 돌기가 있는 철사이다. 하지만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어느 종교나 교통을 이겨내는 과정이 있다. 단식이라든지, 불교의 삼천 배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고 말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보통 성당에 가면 신도가 수백 명이 참석해 신부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푸스데이에서는 홍콩에서 파견 나온 신부와 1 대 1로 접촉하는 일이 많다”라고 말한다. 이 날 모인 오푸스데이 회원·협력자 들은 다 고학력의 전문직 종사자였다. 한 협력자는 “오푸스데이를 접하는 통로가 외국이기 때문에 해외 교류가 많은 계층에서 퍼졌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 공식적인 오푸스데이 신부는 한 명도 없다. 황적인 전 교수는 “오푸스데이가 서울에 학교도 짓고 센터도 만들면서 활동하면 청소년 교육에 좋을 텐데, 서울대교구가 허가하지 않아서 못 하고 있다”라고 아쉬워했다. 박재형씨는 “정진석 서울대교구 대주교에게 몇 차례 타진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푸스데이는 일본·필리핀에서 활동이 활발하지만 태국·한국에서는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오푸스데이를 바라보는 한국 카톨릭계의 견해는 좀 복잡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한 신부는 “홍콩에서 오푸스데이 소속 신부가 자주 찾아와 정진석 주교와 면담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허가할 문제가 아니다. 아직 한국인 오푸스데이 신부가 없어 활동이 시작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측의 설명은 다르다. 한 오푸스데이 협력자는 “내가 다니는 성당의 한 신부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오푸스데이 소속 대학에서 연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몇 달이 안 되어 타의에 의해 서울로 소환되었다”라고 말했다. 서울교구청이 의도적으로 오푸스데이 활동을 막는다는 이야기다.

현재 한국인 오푸스데이 신부는 모두 외국에 나가 있다. 캐나다의 남창수 신부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홍지영 신부가 대표적인 오푸스데이 소속이다. 한 카톨릭 고위 신부는 “국내에도 암암리에 오푸스데이 소속 신부가 20여 명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오푸스데이와 관련성을 인정하는 신부는 한 사람도 없다.

“서울대교구가 오푸스데이 활동 막는다”

2003년 6월20일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를 기념하는 미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한국에서 열린 가장 큰 오푸스데이 집회로 손꼽힌다. 수백 신도가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주한 외국 대사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오푸스데이 행사를 허락했던 혜화동 성당 신부는 “나는 오푸스데이와 관련이 없다. 그냥 장소만 빌려줬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오푸스데이 소속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는 또 다른 신부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는 오푸스데이 회원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오해를 산다.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왜 한국 카톨릭은 오푸스데이와 거리를 두는 것일까? 오푸스데이 신도들이 지나치게 호세마리아 성인을 추앙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카톨릭 신학자는 “오푸스데이의 교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의견이 많다”라고 말했다.

오푸스데이는 낙태 반대 등 카톨릭의 보수 원칙을 강조하기로 유명하다. 한 신부는 “요즘 신부들은 사적인 공간에서는 사제복을 벗는 경우가 있는데, 오푸스데이 소속 신부는 절대 사제복을 벗지 않는다”라고 예를 들었다. 또 오푸스데이에는 ‘남녀 유별‘ 전통이 있다.  지난 4월14일 협력자 모임에 여성 회원은 없었다. 남성 모임과 여성 모임은 분리해서 열리기 때문이다.

여성 오푸스데이 협력자인 박 아무개씨(38·가정주부)는 “남성 회원이나 남성 협력자를 만날 일은 없다. 홍콩 본부에서도 중국계 여성 회원이 와서 따로 모임을 주관한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수라는 평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오푸스데이가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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