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운동한답시고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으면서도…아 그렇게 살았으면서도…저는 20년 동안 뭘 한 걸까요. 제가 20년 동안 한
건 뭐였을까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인 김진숙씨가 설 연휴가 끝난 뒤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김씨는 파견노동자인 조카로부터 열악하기 짝이 없는 회사
생활을 전해 듣고 1998년 IMF 관리체제 때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법을 개정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썼다. 김씨는 거리에 넘쳐나는
‘비정규직 동지’들을 보면 죄스러워 자꾸만 울게 된다고도 했다.
비정규직을
허용하는 쪽으로 노동법이 개정된 지 7년째에 접어드는데도 민주노총은 같은 노동자들을 법의 보호 밖으로 밀어냈다는 죄책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나기는커녕 죄의식은 민주노총 자체를 붕괴시켜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무거워져만 간다. 지난 2월1일 노사정위원회에 다시 참여해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일궈보겠다는 지도부의 노선에 반대하는 그룹이 들고일어나 폭력 사태 직전까지 갔던 것도 그 때문이다. 1998년 노사정
합의를 주도했던 민주노총 인사 중 상당수가 총선을 앞두고 여당을 기웃거렸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민주노총 분열을 촉발한 핵심은 비정규직에
대한 집단 부채 의식이다.
민주노총에 비하면, 민주노총을 사회적 합의에 끌어들이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는 정부 쪽의 문제
의식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볍다. 비정규직 법안 실무 담당자인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장은 이혜선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국회에서 입씨름을
벌이다가 도망치는 촌극을 벌였다. 장과장은 이부위원장에게 “민주노총은 전부 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를 위한 비정규직 법안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라고 쏘아붙였다는데, 그가 과연 대화 파트너인 민주노총의 사정을 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재야에서
오랫동안 노동자의 친구로서 활동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사진)의 문제 의식도 장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정규직에 대한 강한 고용 보호를 양보하지 않고 비정규직 보호만 높여달라고 하면 해결할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규직이 한사코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노와 정의 생각 차이가
까마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