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욕 무대 발판으로 ‘명가’ 등극…국내 명품 매장에 ‘역수입’

 
지난 3월 말 개장한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4층에 가면 눈에 띄는 매장을 발견할 수 있다. 버버리·아르마니·베르사체 등 내로라 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 와이앤케이(Y&Kei) 매장이다. 와이앤케이는 패션 기업 오브제를 이끌고 있는 부부 디자이너 강진영·윤한희 씨가 3년 전 뉴욕에서 처음 선보였다.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품질 덕에 3년 만에 미국·유럽·캐나다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명품 반열에 올라서자, 롯데백화점이 에비뉴엘 매장을 오픈하면서 ‘역수입’했다. 와이앤케이는 에비뉴엘 4층에 입점하자마자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경쟁 브랜드 존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브제의 수장 강진영 대표이사와 그의 아내 윤한희씨는 한국 패션사를 새로 쓰는 대표적인 디자이너이자 경영자이다. 이들은 ‘황금바늘상’(1994년), ‘올해의 디자이너상’(2004년) 등 굵직한 디자인상을 휩쓸며 역량을 인정받은 동시에 1994년 설립한 오브제를 알찬 패션 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 윤한희씨는 “우리의 경영 기법은 아주 단순하다. 옷 팔아서 돈이 들어오면 그걸로 새로 투자하는 식이다. 첫 매장부터 흑자여서 오브제 설립 이후 남의 돈을 쓰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해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브제는 1993년 강씨 부부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낸 작은 의류점에서 출발했다. ‘공주풍 패션’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들의 튀는 옷은 금세 입소문이 났고, 런칭 1년 만에 롯데백화점으로부터 입점 제의를 받았다. 두 번 째 브랜드 ‘오즈세컨’ 역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고, 오브제는 2002년 코스닥에 등록했다.

지난해 최악의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오브제는 매출액 7백79억원에 영업이익 40억원을 냈다. 4백87억원 매출에 14억원을 남긴 2003년 성적에 비하면 영업이익만 190% 이상 증가했다(표 참조). 오브제는 고가 브랜드인 데다 전체 고객 10명 중 8명 이상(85%)이 ‘오브제 마니아’로 불리는 충성 고객이어서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다. 오브제 패션정보실 이영아 실장은 “유행을 좇는 디자인보다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전문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브제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오브제’ ‘오즈세컨’ ‘와이앤케이’ ‘하니와이’ 등 겨우 네 가지 브랜드를 가진 의류업체로서는 보기 드문 성적표다. 이런 성과를 보면서 강희승 서울증권 연구원은 “의류 제조업이 채산성이 낮은 산업이 아니라 브랜드와 디자인 파워를 토대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임을 오브제가 입증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뉴욕에서 런칭한 와이앤케이의 가파른 성장은 국내 기업도 세계적인 패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영 사장은 “수입 명품들이 봇물처럼 들어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광경을 보면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했다. 우리도 한번 붙어보자는 심산에서 와이앤케이를 내놓았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와 깐깐하기로 소문 난 소비자들이 모인 뉴욕에서 성공하면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뉴욕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1년 넘게 준비한 새 브랜드를 뉴욕 패션업계에 ‘신고’하기도 전에 어긋났다. 신고식으로 마련한 첫 패션쇼는 2001년 9월12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 날 9·11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다음 날 쇼에 참여할 모델 오디션을 보는 와중에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윤한희씨는 “당시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도 우리는 약속했던 모델들이 나타나 주기만을 고대했다. 머리 속은 쇼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예기치 못했던 9·11 사태로 인해 와이앤케이의 신고식은 다음 해 5월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해 첫 쇼가 끝난 뒤 뉴욕의 반응은 ‘이거 뭐야?’ ‘누가 한 거야?’였다. 그러고는 ‘이거 프라다가 한 거야?’라고 물었다. 프라다와 비교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면서도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았다. 자국 디자이너를 우선하고 보호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게다가 패션의 고장 유럽에서 온 디자이너와 국가 경제력을 무기로 한 일본 디자이너, 심지어 중국에서 온 디자이너들까지 대접해주면서도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이 디자이너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1년 뒤 상황은 달라졌다. 와이앤케이 마니아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2003년 뉴욕의 권위 있는 패션 단체인 세계패션그룹(FGI)이 이들에게 ‘떠오르는 스타상’을 주었다.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인공과 자연의 이미지를 복합해서 표현한 독특한 디자인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뉴욕은 물론 세계 패션계가 와이앤케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강진영 사장은 “처음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들이 이제는 ‘쟤들 옷 좀 만들 줄 아네?’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강사장은 한국 패션이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뚫기 위해서는 옷을 잘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와이앤케이가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옷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기치 못한 수상 덕에 이들은 뉴욕 패션업계의 주류로 진입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와이앤케이는 지난해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이와 함께 브리트니 스피어스·머라이어 케리·기네스 펠트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와이앤케이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판매율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머라이어 케리는 와이앤케이를 입고 앨범 재킷을 촬영했다. 홍보 효과를 노려 일부러 입힌 것이 아니라 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와이앤케이 옷을 사 입었는데, 오브제 식구들은 방송이나 잡지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스타들이 입은 옷을 보고 전화로 주문하는 고객이 크게 늘 정도로 홍보 효과는 놀라웠다.

와이앤케이는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를 타깃으로 하는 고가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캐나다·유럽 80개 매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첫선을 보인 두 번째 브랜드 ‘하니 와이’ 역시 미국의 ‘바니스 뉴욕’과 영국 런던의 ‘브라운스’ 등에 입점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은 오브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다. 이 회사는 올 하반기쯤 새로운 잡화 브랜드를 출시하고 와이앤케이와 하니와이의 세계 시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홍콩·타이완·싱가포르·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오브제는 9백9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75억원을 남길 전망이다. 한국 패션 기업의 고유 브랜드로 세계 명품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오브제는 올해 또 하나의 신화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