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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소피 갈루아

 
세상에는 유명한 술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특이하게도 몇 가지 술에만 집착한다. 로열살루트(왕의 예포)라는 양주도 그중 하나다. 특히 21년산(産)은 애주가들이 즐겨 마시는 고급 술이다. 로열살루트 21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섯 살 때(1931년) 위스키를 통에 담아, 그녀가 여왕에 즉위하던 해(1952년)에 처음 출시된 술이다. 21은 숙성 기간과 대관식 때 쏘아올린 축포 스물한 발을 뜻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로열살루트 21은 자주색·청색·청록색 도자기에 담겨 있는데, 세 가지 색은 영국 왕실의 왕관에 박힌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를 상징한다. 로열살루트 21이 2003년 10월 제7회 세계 주류경진대회에서 ‘최고의 블랜디’로 선정된 것도 이같은 역사와 화려함 덕이다. 그런데 최근 21년을 훌쩍 뛰어넘은 38년산이 등장했다. ‘로열살루트 38-스톤 오브 데스티니’(운명의 돌). 이 술은 출시되자마자 화려한 외양과 비싼 가격 때문에 벌써부터 화제다.

로열살루트 38의 ‘산파(産婆)’는 소피 갈루아다. 그녀는 시바스 브라더스(1801년에 설립된 영국의 주류 회사) 소속인데, 현재 세계 슈퍼 프리미엄급 위스키 업계에서 단 한 명뿐인 여성 브랜드 디렉터이다. 그녀는 그동안 시바스리갈 18·로열살루트 50 등의 마케팅을 총괄했고, 로열살루트 38의 국제 판매 전략을 짰다.

시바스 브라더스는 이 로열살루트 38을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뒤 세계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했다. 3월10일, 소피 갈루아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왜 로열살루트 38을 한국에서 맨 처음 출시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술병이 화려하다.
손으로 만든 화강암풍 도자기 병이어서 그렇다. 모든 장식에 24k 금을 도금했고, 마개는 중세 기사들이 사용하던 스코틀랜드 검의 손잡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래 숙성시키면 무슨 술이든 다 좋은 술이 되는가?
아니다. 어떤 나무로 된 통을 쓰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 로열살루트 38은 오래 전에 쓰던 참나무 통이나, 그것을 분해·재조립한 통에 넣어 숙성시켰다.

폭탄주를 즐기는 한국인 애주가들에게 소매가 1백70만원은 좀 비싸게 여겨진다.
희소성을 생각할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 ‘38’은 38년 이상 된 원액을 썼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40~50년 된 위스키도 섞여 있다. 한국의 폭탄주 문화를 잘 안다. 그러나 로열살루트 38만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희소하다고 말했는데, 한정 판매가 아니고 양산 판매이다.
38~50년 된 원액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시바스 브라더스는 전세계에서 희귀한 위스키 원액을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다.

왜 이처럼 비싼 술을 한국에서 맨 처음 출시하게 되었나?
한국은 타이완과 함께 가장 큰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이다. 그렇지만 타이완은 룸살롱 등에서 많이 소비한다. 반면 한국은 선물용, 개인 음주용으로 대량 소비한다. 로열살루트 38의 타깃으로 더없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소피 갈루아는 로열살루트 38의 전체 판매량 가운데 50% 정도를 한국에서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무절제한 술 소비 문화와 과시욕이 외국인들의 표적이 된 것 같아 씁쓸했지만, 그게 이른바 시장주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술맛은 어떨까. “술을 머금으면 삼나무와 아몬드의 고급스러운 향기가 느껴지고, 술을 삼키고 나면 건과일 향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스카치위스키를 더 감칠맛 나게 즐기려면 과일보다 육류 안주를 택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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