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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공동선언, 볼턴 유엔대사 임명 등으로 ‘북핵 난기류’ 가중

 
‘제2의 베를린 선언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한 지 한 달째. 폭풍 전야의 적막감마저 감도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높다.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 발언과 유럽 순방으로 이어졌던 ‘노무현 이니셔티브’를 재점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4월10~14일 노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이 이를 위한 중요한 기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실마리를 풀었듯이, 노대통령 역시 분단과 통일의 상징 베를린에서 북핵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를 열 필요가 있다. 정부 사정에 밝은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핵 보유 선언으로 인한 정부 내부의 무력감과 배신감을 빨리 극복해야 할 때다. 새로운 해법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이니셔티브’에 대한 요구 커져

노무현 이니셔티브에 대한 주문이 느는 것은 그만큼 북핵 국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타이완 해협을 둘러싼 미·일과 중국의 대립이 북핵 문제에까지 번질 조짐이 나타난다. 지난 2월19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미국과 일본의 국무·국방장관회담(2+2회담)에서 미·일 양국이 타이완 문제를 공동의 안보 관심사로 거명하자,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3월8일에는 반국가분열법 초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타이완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날인 3월9일, 이번에는 북한이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중국의 타이완 통일정책을 편들고 나섬으로써, 북·중 연대를 과시했다. 타이완과 실리적 관계를 유지해오던 북한이 중국 지지를 공개 천명했다는 사실보다, 타이완 문제와 북핵 문제가 연동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이처럼 북핵 문제가 제2막에 접어들면서 워싱턴의 ‘본색’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7일 미국은 반 유엔적 발언으로 악명을 떨쳐온 존 볼턴 전 국무 차관을 유엔대사로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경우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지명된 이후 존 볼턴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 자신은 국무부 부장관을 희망했지만, 라이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부시 1기 정권 때 그가 체니 부통령과 손잡고 파월 국무장관을 어떻게 곤경에 빠뜨렸는지를 라이스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워싱턴에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렸다. 존 볼턴을 살린 것도 체니였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라이스가 차기 대권에 뜻을 두기 시작하면서 네오콘을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미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라이스가 국무부에 끌어들인 현실주의자 그룹과 네오콘 간에 공통의 해법 및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는 관측도 있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일본(3월9~11일)을 거쳐 워싱턴에 도착하고,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방문(3월18~21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입장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6자 회담 수석대표에 이어 최근 동아태 차관보로 공식 임명된 힐 대사가 워싱턴을 방문하면 미국이 더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 달간 워싱턴 내부의 여러 논의 과정에서, 북한이 무조건 회담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방침 외에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힐 대사가 이같은 냉랭한 분위기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번 한·중·일 순방을 통해 미국이 북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의 중재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그동안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본과 함께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의존 탈피, 미·일 협조 강화를 축으로 하는 미국의 ‘독자 해법’이야말로 타이완 문제를 공동의 안보 관심사로 천명한 2·19 미·일 공동선언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중국에 대해 중재에 더욱 전념해 달라고 촉구할 것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신이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사실 일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제재, 속으로는 협상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스가 이번에 방문하는 목표는 일본을 미국의 틀 안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타이완 긴장 한반도 파급 막아야

이와 같이 네오콘 행동대장 볼턴을 유엔으로 보내 북핵 문제 안보리 회부를 준비하게 하고, 일본을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것이 제2막에 접어든 미국의 구상인 셈이다.

한국이나 중국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대북 제재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이미 2·19 미·일 공동선언으로 중국과 전선이 구축된 상태이다. 미·일의 대북 제재는 한반도를 제2 전선화 함으로써 중국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치 국면이 고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 나서서 돌파구를 열어야 할 상황이다. 물론 중국도 움직일 것이다. 타이완 해협에 이어 한반도에까지 전선이 형성되면 중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2·19 공동선언 이후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는 여전히 중재자이지만 타이완 문제에서는 미·일과 대립하는 분쟁 당사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문제다. 자칫하면 중국의 중재력만 가지고 100%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다. 노대통령이 지난 3월8일 공사 졸업식에서 천명한 것처럼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가 국제 분쟁에 휩싸이는 것을 반대할 권리가 있다. 노대통령은 당시 주한미군이 타이완 해협에서 발생하는 군사적 충돌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이같은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타이완 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나중 문제이다. 지금 오히려 급한 것은 타이완 해협에서 번지기 시작한 불길이 북핵 문제를 타고 한반도로 상륙하려 한다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이다. 타이완 해협에서 올라오는 불길을 차단해야 한다. 한반도가 타이완 해협과 연결되는 제2 전선으로 고착되기 전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노대통령이 민족의 공동 운명을 놓고 북한을 설득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으로 하여금 6자 회담에 복귀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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