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해외파 복귀’로 프로 리그 대박 가능성
1983년 5월8일 할렐루야와 유공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프로 축구의 막이 올랐다. 1982년 프로 야구가 개막되어 전국은 온통
야구 열기로 가득했다. 반면 축구는 쇠퇴 일로였다.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이란과 일본에 패하며 예선에서 탈락하자, 한국
축구계에는 자성하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는 1983년을 ‘한국 축구 재건의 해’로 정하고 프로 축구 ‘슈퍼리그’를
출범시켰다.
개막 원년에는 할렐루야 독수리·유공 코끼리 등 프로팀 두 팀과 포항제철
돌고래·국민은행 까치·대우 왕관 등 실업팀 세 팀이 참가했다. 리그 운영도 기형적이었다. 한 지역에서 팀별로 2연전, 총 40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선수들은 토요일과 일요일 연속 경기에 나서야 했다.
프로 리그 출범은 한국 축구의
도약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냈다. 프로팀 수가 절대 부족했고 지역연고제도 뿌리 내리지 못했다. 리그를 끌고갈 스타
플레이어도 부족했다. 특히 국가대표팀 경기 때마다 경기장을 채우던 관중은 프로 경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프로 리그는
파행을 겪었다.
프로 리그, 대도약할 기회 두 번 놓쳐
프로 축구의 문제점은 출범한 지 22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프로 축구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두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쳐버렸다. 첫 번째 기회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후 찾아왔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은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며 예선 탈락했다. 그러자 축구팬들의 이목이 프로 축구에 쏠렸다. 허약한 국내 프로
리그로는 국제 수준에 올라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일종의 반사 행동이었다. 고종수·이동국이 최고 스타로 떠오르며 관심이 쏠렸다. 프로
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던 안정환은 곱상한 외모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들은 축구에 관심이 적은 중고 여학생들을 대거 운동장으로 불러들였다.
1999년 축구경기장을 찾은 2백67만명은 아직까지 최다 관중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각
구단은 스타로 떠오른 선수들을 관리할 ‘스타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다. 이들을 상품으로 인식하고 수익으로 이어갈 아이템도 없었다. 고작해야 팬
사인회였다. 그러는 사이 연예인 에이전트들이 스포츠 스타를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연예인 에이전트들은 운동선수를 운동하는 연예인으로 인식하고
마케팅 전략을 짰다. 스타 선수들은 텔레비전에 출연하기 바빴다. 연예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와 랩을 했고, 광고를 찍느라 훈련에 빠졌다.
몇몇 스타 선수는 연예인들과 나이트클럽에 몰려다니며 몸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실력이
눈에 띄게 퇴보했다. 1998년 월드컵 대표로 뛴 한 선수는 “당시 축구 선수들 사이에 연예인 사귀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만지고 여자들이 몰리자 정신을 못 차리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대표팀의
경기력은 크게 떨어졌다. 1999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2000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부진하자 축구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프로 축구는 다시 찬밥 신세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성공으로 프로 축구계에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월드컵을 통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김남일·이천수·안정환 등 축구 스타들은 팬들의 극성 응원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7월7일 개막전에는 총 12만3천여명이 입장해, 역대 1일 최다 관중을 기록했고, 매경기 관중 기록을 경신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월드컵을
통해 저변이 넓어진 축구 토양은 구단 창단으로 이어졌다. 광주 상무·인천 유나이티드·대구 FC 구단이 이때 등장했다.
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이나 구단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남 구단은 2002년 월드컵 이후 최고 인기 선수로
떠오른 김남일과 최고 인기 감독 이장수를 활용하기는커녕 마찰음을 내며 팬들의 원성을 샀다. 한 축구 전문 기자는 “관중이 들자 비명만 질렀지
열기를 이어갈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연맹이나 구단은 스타 선수들을 활용할 프로그램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김남일·이천수·안정환·조재진 선수 소식은 스포츠 뉴스보다 연예 프로그램에서 접해야 했다.
에이전트와 구단의 싸움에 선수가 다치기도 하고, 에이전트가 선수의 앞날을 가로막기도 했다. 한꺼번에 여러
연예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무분별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하다가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몇 구단은 이미 통제권을 벗어난 스타 선수들 때문에
오히려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월드컵 스타 송종국(부산), 이영표(안양), 이을용(부천)이
시즌 중반 나란히 유럽 무대에 진출하면서 K리그의 열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결국 월드컵이 끝난 지 두 달 만에 축구 열기는 식어버렸다.
세계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최첨단 월드컵경기장은 다시 공터로 돌아가고 말았다. 스타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갔지만 연일 만원 관중을 이루는 일본
J리그와는 대조를 이루었다.
“박주영은 박찬호 이후 최고 스포츠 상품”
2005년으로 접어들면서 프로 축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등극할 호기를 잡았다. 새해
벽두 청소년대표팀이 카타르 8개국 대회에서 맹활약해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은 것이다. 특히 박주영(20·FC 서울)은 한국 축구의 고질인 골
결정력 부족을 일거에 해소할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위 상자 기사 참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은 우려를 씻고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2-0으로 꺾었다.
월드컵대표팀은
3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전(사우디아라비아 담맘)과 3월30일 우즈베키스탄전(서울) 등 올 한 해에 걸쳐 최종 예선을 치른다. 또 청소년대표팀이
3월23일부터 프랑스 몬태규 청소년대회에 참가하고, 6월에는 네덜란드에서 세계청소년대회가 열린다. 대표팀의 굵직한 대회를 프로 축구연맹과 각
구단이 잘만 이용한다면 이는 엄청난 호재임이 분명하다. 물론 대표팀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에는 K리그에 ‘독’이 될 것이다.
올 시즌 프로 축구판 볼거리도 수두룩하다. 프로 축구의 르네상스를 이끌 스타는 단연 박주영이다. 한 스포츠
신문 편집국장은 “박주영은 박찬호 이후 최고의 상품이다”라고 말했다.
수원 송종국, 울산
유상철 그리고 국내 복귀를 노리는 이천수까지 올 시즌 K리그에는 스타가 많다. 이장수 FC 서울 감독(48),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51),
허정무 전남 드래곤즈 감독(49).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세 스타 감독 사이에 서로 얽힌 실타래도 흥미를 더하고 있다. 차감독과 허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차감독은 1978년 독일 SV다름슈타트로, 허감독은 1980년 PSV아인트호벤으로 진출해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이감독과 차감독은 중국 대륙에서 지휘봉을 잡고 경쟁했다. 중국에서는 이감독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하지만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는 차감독이 1-0으로 승리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허감독은 이감독이 전남에서 경질된 뒤 후임 사령탑으로
입성했고, 이감독은 서울의 사령탑에 앉아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둘의 역대 전적은 2승1무2패. 올 개막전에서도 격렬한 공방
끝에 3-3으로 비겼다.
프로 축구 20년 역사가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놓았다. LG와 삼성의 전통적인 경쟁 관계에다 안양과 수원이라는 지역 라이벌이라는 구도가 가미되었다. 안양의 간판 서정원 선수가 프랑스에
진출한 뒤 수원으로 복귀하자, 양 팀은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는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바꾸고 나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 수원이 돈줄을 풀어 송종국과 김남일을 불러들이자 서울은 박주영을 영입해 맞불을 놓았다. 대권 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틈만 나면 축구장에 얼굴을 내밀어 경쟁 구도를 달구고 있다.
축구 흥행을 위해서는 라이벌 카드가 필수이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바르셀로나 지역)은 과거 프랑코 장군의 독재 시절(1892~1975년)에
마드리드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무역도 가로막혔다. 레알 마드리드의 열혈 팬인 프랑코 장군은 FC
바르셀로나 축구팀도 탄압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그때부터 축구는 카탈루냐인들의 저항운동이 되었다. 카탈루냐인들은 지금도 스페인 정부로부터
독립을 원하고 있는데, 스페인 수도가 연고지인 레알 마드리드를 타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스코틀랜드 신교를 대표하는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구교를 대표하는 글래스고 셀틱의 대결은 종교 전쟁이다. 그들의 경기는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AC밀란과 인터밀란, 잉글랜드의 아스날과 토튼햄, 네덜란드 아약스와 PSV 아인트호벤의 라이벌전은
리그 우승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프로 축구 관중
3백만 돌파 목표 이룬다”
프로 리그 부흥을 위한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
프로축구연맹은 컵 대회를 시즌 전반에 개최함으로써 관중 동원에도 성공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사무총장은 “축구 스타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그간 노하우가 쌓였다. 숙원이던 프로 관중 3백만명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프로 축구 진흥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프로 축구의 인기는 야구 시즌이 개막되기 전 반짝 인기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팀 수를 늘려 2부 리그를 시행하고 성적에 따라 1부와 2부를 오가는 업다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한·중·일 프로 축구 리그 통합 문제 등 구체적인 마스터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축구팬들은 2004 시즌 종합 득점 순위에서 용병이 1위부터 7위까지 차지하는 등 외국인 선수의
독주가 K리그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3월9일 박주영은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후반 45분을 뛰었다. 박주영은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프로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경기였다”라고 말했다. FC 서울 이장수 감독은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로 몇 차례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잘했다. 주영이는 영리한 선수여서 금방 적응하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막전 이후 박주영이 프로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본프레레 감독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박주영에게서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 축구 전문가는 “전문적인 대인 마크를 받는 프로에서 박주영은 몸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 차출이 잦아 성인 무대 적응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스포츠 신문 축구 기자는 “박주영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박주영 거품은 서너 경기만에 빠질 수도 있다. 언론이 박주영을 지나치게 부풀린 감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주영의 대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실성을 믿는다. 박주영은 축구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선교 활동이라고 말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밖으로 나도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FC 서울 구단과 박주영의 에이전트도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박선수의 에이전트측은 “연예 프로그램 등 스포츠와 관련 없는 프로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은 확고하다. 박주영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