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가 새로운 미디어 권력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간지들과의 힘의 균형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다.
외교 관례를 깨고 주말인 지난 3월19일 서울에 온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3월 21일
한국을 떠나는 순간까지 유달리 시간에 쫓겼다. 어찌나 바빴는지 방한 당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학생 16명과 만나 ‘젊은이와의 대화’ 일정을 치를
때도 단 두 마디 인사만 하고 떠났다. 하지만 이 와중에 라이스 장관이 제대로 챙긴 행사가 있다. 바로 인터넷 포털뉴스 미디어다음과 주한
미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라이스 장관 초청 토론회’였다.
3월20일 아침 9시 서울 하야트호텔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라이스 장관은 미디어다음·미디어오늘 등 인터넷 언론인 11명과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국내 유력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뿌리친
라이스장관이 인터넷 포털 뉴스 토론회에 시간을 할애한 것은 파격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그녀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아주 성공적이고 인상적인
이벤트’라고 평하며 흐뭇해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국 미디어 권력의 냄새를 맡는 데 늘
한국 정부보다 한 걸음 앞섰다. 2002년 8월 오마이뉴스가 신흥 파워 언론으로 떠오르기 직전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을 방문해
인터뷰에 응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뒤 대선 정국을 통해 오마이뉴스는 차세대 미디어로 떠올랐다. 2년 뒤인 2004년 2월 허바드
대사와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은 미디어다음과 인터뷰했다. 이 때 미디어다음과 인연을 맺은 미국대사관이 올해 라이스 장관 초청 행사를 공동 기획한
것이다. 그 사이 미디어다음은 차세대 미디어 1위 자리를 굳혔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미대사관 공보 담당 보좌관은 2004년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직원’ 상을 받았다.
한편 국정홍보처는 지난 2월17일 포털 네이버뉴스와 콘텐츠 제휴 협정을
맺었다. 네이버뉴스는 미디어다음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포털 뉴스 2위 업체다.
바야흐로 포털 뉴스의 시대다. 포털 뉴스를 잡는 자가 세상을 잡는다.
인터넷 광고회사인 나스미디어가 네티즌 5천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네티즌의 85.7%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며, 단
10.3%만이 신문사 사이트(신문닷컴)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다음의 주간 순 방문자는 1천2백만명이 넘는다. 전체 국민 4명 중 1명이
본다는 말이다. 일간지 중 1위 사이트라는 조인스닷컴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국내 모든 일간지의 방문자 수를 합쳐도 미디어다음을 앞설 수 없다.
포털 뉴스와 일간지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다. 서강대 원용진 교수는 “처음
포털 서비스는 언론에 기생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주객이 뒤바뀌었다. 지금은 포털이 숙주가 되고 기존 언론이 그에 기생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일간지 기자인 김 아무개씨(27)는 “기사를 쓸 때 내 기사가 지면에 실리는 것 못지 않게 포털 사이트에 어떻게 올라갈지 염두에 두게
된다. 신문 독자보다 포털에서 내 기사를 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최근 스튜어디스들이 납치·강간당한다는 기사를 썼는데, 포털에서 좋아할
아이템이었다”라고 말했다. 자기 기사가 포털 로부터 평가받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기존
언론사들의 불만은 높아가고 있다. 조인스닷컴 미디어본부장이자 온라인신문협회 사무국장이기도 한 이전행씨는 “포털에 간 기사는 브랜드가 사라진다.
네티즌은 기사의 원 출처를 모른 채 뉴스를 읽는다”라고 말했다. 헐값 논쟁도 여전하다. 현재 포털 사이트들이 뉴스 제공자로부터 기사를 사는
가격은 통신사가 월 3천만~5천만원, 큰 신문사가 1천만~1천5백만 원이다. 이것도 지난해 파란닷컴이 스포츠 신문사와 월 1억원에 독점 계약하는
바람에 조금 오른 수준이다. 몇몇 언론사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값으로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신문협회에 소속된 한 인터넷 언론사 간부는
“기분 나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가 포털 뉴스와 제휴하기 때문에 포털 뉴스와 손잡지 않으면 소외된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포털이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1년 야휴뉴스가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단순히 뉴스 목록만 보여주는 정도였다. 그후 월드컵과 2004년 총선 붐을 타고 포털 뉴스가 급성장했다. 2003년 3월 미디어다음 출범은
전환점이었다. 미디어다음 석종훈 본부장은 2003년 이전을 포털 뉴스 1기, 이후를 2기로 나누며 “우리가 처음 편집 개념을 도입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석종훈 본부장은 2002년 11월 미디어다음에 부사장급 대우를 받고 직장을 옮겼다.
현재 뉴스 사이트 경쟁 구도는 다음과 네이버의 양강 체제로 굳어졌다. 인터넷 조사 업체 코리안클릭의 자료에 따르면, 뉴스 사이트
점유율에서 미디어다음이 45%, 네이버가 35%인데, 3위인 KBS는 13%에 불과하다(포털 뉴스 3위는 야후뉴스). 미디어다음이
등장하기 전까지 네이버뉴스가 1위였던 만큼 두 사이트 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지난 2월 네이버뉴스(news.naver.com)가 속한
네이버(www.naver.com)가 미디어다음(media.daum.net)이 속한
다음www.daum.net)을 순방문 자수(코리안클릭 자료)에서 이겨 네이버는 고무된 분위기다. 다음측은 다른 조사 업체인 메트릭스의 자료에서
자신들이 앞서있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초기 화면에서 뉴스를 보기 때문에, 날로 격화하는 네이버와 다음의 경쟁이 뉴스 분야에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 3월 초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의 땅투기 의혹이 관심사가 되었을 때, 미디어다음은 물을 만난 듯 일간지 정치·사회부 기능을 발휘했다. 당시 미디어다음은 거의 매일 이헌재 비리 의혹 기사를 메인 화면 탑에 띄웠고, 자체 취재 기사도 몇 번 냈다. 당시 이부총리가 사퇴한 데에는 그가 위원장으로 있던 특구위원회가 아내 명의인 전라북도 고창 땅을 관광특구로 지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최정훈 뉴스 팀장은 “관광특구 지정 사실을 최초로 특종 보도한 기자가 미디어다음 선대인 기자였다”라고 말했다. ‘부총리를 낙마시키는 맛’을 느꼈을 법하다.
반면 네이버뉴스는 취재 인력이 없다. 20명 가운데 14명이 편집 일을, 2명이 시사 퀴즈를, 4명이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미디어다음 뉴스팀장이 경향신문 기자 출신이지만, 네이버뉴스 박선영 팀장은 전직 기자가 아니다. 박팀장은 “포털 뉴스 팀장은 반드시 기자 출신이어야 한다는 사고는 낡은 편견이다. 신문 제작과 온라인 저널리즘을 혼동하지 말자. 이 분야에서 과연 누가 더 전문성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요즘 포털 뉴스 업계에서는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하다. 달리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인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디어다음의 한 기자가 파란닷컴으로 옮겼다. ‘유력 포털 뉴스의 아무개 기자가 경쟁 업체에 원서를 냈다’는 소문도 나돈다.
지난 3월7일 <시사저널> 취재진이 제주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미디어본부 뉴스팀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보았다. 이날 아침 9시30분 뉴스팀 편집기자들이 회의실에 모여 회의하고 있었다. 취재 기자 5~6명은 서울 사무실에 있지만, 매일 아침 회의는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며 진행한다.
아침 회의는 먼저 경쟁사와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 주 순방문자 수와 페이지뷰가 경쟁사에 비해.... ”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똑같은 기사를 놓고 ‘경쟁사는 메인 화면에 올렸는데 우리는 드러내지 않았다’거나 ‘경쟁사는 이 기사를 볼드(제목을 굵게 해 강조하는 것)로 했더라’는 식의 평가가 오갔다. 기획회의 모습은 여느 오프라인 편집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제주의 뉴스팀장은 서울의 취재 기자에게 부총리의 의혹을 더 챙기라고 주문했고, 서울의 기자는 광주 추가 출장을 제안했다. 회의를 마치고 한 시간 뒤 부총리 사퇴 뉴스가 미디어다음 기사 창고 시스템에 떴다.
편집 기자 10여명은 하루 4천개 이상 몰려오는 뉴스들을 선별하느라 바빴다. 시간대마다 뉴스 포털에 접속하는 네티즌의 양상이 다르다고 한다. 아침 9시에는 막 출근한 직장인들이 컴퓨터를 켜면서 접속이 급증하는 시간이다. 오후 4~5시는 하교한 초등학생들이 몰려드는 ‘초딩 타임’으로 불린다. 저녁 5~8시는 일간지 기사 마감과 겹쳐 홍수처럼 뉴스가 몰려드는 제일 바쁜 시간대다. 아르바이트 재택 근무자들은 ‘악성 댓글 지우기‘를 한다.
편집자들의 일 중에 제목 고치기가 있다. 미디어다음 오은주 기자는 “아무래도 일간지 독자와 다르기 때문에 쉬운 문장으로 고친다. 한자어를 풀어 쓰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웹 화면에 맞게 제목 글자 수를 조정하기도 한다. 업무 중에는 네티즌들의 갖가지 요구 사항을 처리하는 것도 있다. “부상당한 개 사진이 너무 잔인하니 모자이크 해라” “기사 중에 개불알꽃이라는 낱말이 있는데 틀렸다. 개불알풀이다”라는 식의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
심각한 항의도 있다. 3월8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측이 포털 네이버뉴스에 항의 전화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날 네이버뉴스에 이명박 시장이 전여옥 대변인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뜬 것. 하지만 기사는 CBS 노컷뉴스가 전여옥 의원과 김현미 대변인의 이름을 바꾸어 쓴 것이었다. CBS는 이내 수정했지만 네이버뉴스에 늦게 통보되어 전여옥 의원은 2시간 가까이 네티즌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다.
최근 일각에서 포털들이 선정적인 뉴스와 책임 없는 편집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지난 1월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이 작성한 연예인 유언비어 정보(엑스파일)가 유출되는 파문이 일었을 때, 엑스파일의 주요 유통 통로가 포털 뉴스였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뉴스 아래 붙은 댓글로 엑스파일을 볼 수 있는 요령이 퍼진 것이다.
최근에는 포털 뉴스 비판 전문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3월23일 문을 연 안티포털(antiportal.net) 운영자 이문원씨는 “재벌이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왜 코스닥 문어발 기업이 언론 행위를 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가?”라고 따졌다.
신문 업계에서는 포털 뉴스에 맞설 대항마를 띄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신문협회가 추진하는 ‘아쿠아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조선·중앙·동아 등 국내 주요 일간지가 모두 소속되어 있는 온라인신문협회의 이전행 사무국장은 “아카이브라고 불리는 뉴스 창고를 중심으로 기사 유료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앞으로 포털에서 지난 기사를 보려면 요금을 내야 한다. 또 각 일간지 홈페이지도 어느 정도 포털 뉴스 기능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온라인신문협회 소속사의 한 간부는 “회사마다 경영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포털 뉴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을 법적 테두리 안에 넣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면서 포털의 정체성을 캐묻는 사람이 늘고 있다. 3월23일 언론개혁국민행동(상임공동대표 김영호·이명순)은 기자회견을 열어 ‘신문법 및 언론구제법 시행령 공동안’을 발표했다. 포털 사이트에 대해서는 신문발전기금 같은 수혜 대상에서는 제외하되 언론중재법·선거법 상의 의무는 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그 권력의 속성 때문에 행정·입법·사법 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린다.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황용석 교수는 "포털은 뉴스를 게이티키핑(선별)하고 편집하므로 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다음 같은 경우는 언론사로 보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지금 포털 뉴스는 4.5부의 길목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