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장의 편지]

 
대통령이 할 말이냐고 말은 많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3월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한·일 관계의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 역사 왜곡, 독도 시비 등은 지난날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국민이 주기적으로 열병을 앓듯 일본에 화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말과 달리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조금치도 뉘우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일본의 침략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일본군이 저질렀던 숱한 양민 학살과 생체 실험, 그리고 위안부 동원과 같은 만행의 진상을 밝히고 사과한 적이 없고, 당연히 피해 보상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 보니 일본이 패전한 지 반 세기가 넘게 지났는데도 번번이 피해 당사국들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본을 떠올리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들의 한(恨)이 얼마나 깊을까 생각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 정치에 맞서 회사 내에서 농성을 벌이던(사진)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 1백30여명은 1975년 3월17일 정체 모를 폭력배들에게 얻어맞으며 들려나간 뒤 30년간 복직하지 못했다. 동아투위는 지난 3월17일 결성 30주년을 맞아 6백 쪽에 달하는 그동안의 투쟁 기록을 모은 책 <자유 언론>을 펴냈다. 이미 대부분 고희를 바라보는 그들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을 언론계에서 몰아낸 세력이 털끝만큼도 과거를 반성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과 그 뒤를 이은 신군부 관계자 누구도 그들에게 사과하지 않았으며, 권력에 굴복해 그들을 몰아내는 데 협조했던 회사측은 복직과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이 거리를 헤맬 때 언론계에 남았던 기자들은 아직도 박정희 찬가를 불러대고 있는데.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해직된 기자들의 처지도 동아투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작년 12월 말 복직을 원하는 해직자 94명을 올해 3월 말까지 복직시키도록 해당 언론사에 권고했으나 복직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이야말로 군부 독재를 정당화하고 민주화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닌가.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