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김대환 지음, 현암사
“전혀 상관없는 분야인 듯 보이지만 소리 찾기와 세각은 내게 하나다. 목판을 파고드는 칼끝의 사각사각하는 소리는 내 귀의 미세한 감각을 살려냈고 소리의 세계를 더 깊고 풍요하게 했다. 뇌성벽력에서 이슬방울 굴러가는 미음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소리, 무질서한 감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것을 북소리로 구현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위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김대환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하늘이 허락하는 수준의 경지를 스스로 체득한’
사람이었다. 그 노력이란 평생에 걸쳐 하루 4시간만 잠을 자고,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새벽에도 반드시 연습에 매달리는 것, 요컨대 ‘연습이라는
장엄한 구도의 길’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오로지 연습 하나로 일관해온 사람이다.
음악에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쳤기에 자나 깨나 연습에 골몰했다. 젊은 시절 트럼펫이든 드럼이든 아무리 이를 악물고 연습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위 사람들은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럴수록 독종이 되어 갔다. 밤무대를 뛰고 오면 새벽 3시. 하숙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악기 창고로 들어갔다. 후배에게 바깥에서 자물쇠를 채워달라고 부탁한 뒤 날이 새도록 드럼을 두들겼다.”
“그의 예술적 성취 수준은 한국의 학벌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신비의 경지이며, 서로 전혀 다른 소리의 세계와 글씨의 세계를 자유롭게 그러나 피나는 수행으로 드나들면서 우리에게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실로 도사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자기가 도사인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작업이 한낱 손놀림이 아니라 기쁨의 고통이요, 깨달음의 수행이었다.”
2004년 3월2일 세상을 떠난 김대환의 1주기를 맞아 생전의 어록과 자전적 기록들을 정리해 펴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명실상부한 철학자와 만날 수 있다. 철학자 김대환이 남긴 말들 가운데 특히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들로 이런 것이 있다. “귀로 들리지 않는 것은 눈으로 듣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귀로 볼 수 있다.” “북은 때리는 게 아니라 울리는 것이다. 북을 때리면 가죽이 채를 밀어내고, 북을 울리면 가죽이 방망이를 껴안는다. 가죽을 잘못 다루는 사람이 북을 치면 제아무리 굵은 채라도 부러지고 마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