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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수 검찰총장 인터뷰

오는 4월2일 퇴임하는 송광수 검찰총장은 군대 용어로 치면 ‘제대 말년’이다. 그런데 인터뷰 며칠 전 평소 알고 지내던 검찰 관계자들에게 송광수 총장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공통적으로 ‘레임 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재임중 ‘독일 병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철저하게 업무를 챙겼고, 검찰의 독립적인 위상을 확보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막판까지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다.

 
지난 3월1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8층 검찰총장실에서 송총장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선비 같은 단아한 자세를 유지한 그는 대화 도중 옅은 미소를 짓곤 했다. 송총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거악(巨惡)이 존재한다고 강조했으며, 대선 자금 수사를 시작할 때 이미 대통령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른바 ‘차떼기’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1시간 1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중수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면 먼저 제 목을 치겠다고 말했다가 그런 흉측한 말을 했다고 딸에게 혼났다”라는 송총장의 말 때문에 한바탕 웃음이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2년이 훌쩍 갔다.
취임할 때 검찰이 네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독립적인 수사·정치적인 중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도와 관행이 국민들과 많은 괴리가 있다, 국민들에게 자기 식구들의 잘못은 엄하게 다스리지 않는다고 비치고 있다, 조직 내 단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정치적으로 독립해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는 일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제도와 관행 또한 많이 개선되었지만, 국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철저하게 하고 있는 내부 감찰 결과는 앞으로 외부에 알릴 필요가 있다.

재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대선 자금 사건, 송두율씨 사건, 총선 부정선거 행위자 처벌 사건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선 자금 수사는 정치권과 재계 전반을 수사해야 하는 사건인데 좀더 폭을 넓히고 깊이 들어갔으면 더 많은 정보가 나왔을 것이다. 계속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끝낸 것이 가장 아쉽다.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

대선 자금 수사가 시작되었을 때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왜 시작했나?
처음에 삼성을 목표로 했다가 나중에 SK로 바뀌었다는 음모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전임 총장 때 서울지검이 분식 회계와 관련해 SK를 수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선 당시 정치권에, 대선 이후 대통령 측근에게 돈이 간 기초적인 첩보가 수집되었다. 한번 수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자금 추적 등 필요한 수사를 은밀하게 진행시킨 뒤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을 때 공식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SK 외에 다른 기업들이 정치권에 자금을 준 것에 대해서 우리는 첩보나 자료를 일절 갖고 있지 않았다.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다른 기업들도 대선 자금을 주지 않았겠냐며 수사를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첩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측근들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수사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수사할 경우 충격도 크고 어려움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확실한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건인 만큼 수사하는 것이 검찰에 부과된 사명,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수사 과정에서 닥치는 어려움은 극복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대선 자금 수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
증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과 재계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경우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엄청난 비판을 받지 않겠나 싶어서 (수사 확대 여부를) 고민할 때가 제일 어려웠다.

대선 자금이 이른바 ‘차떼기’로 한나라당에 건네졌는데.

제1보를 보고받았을 때 수사한 결과 나온 것이니 안 믿을 수는 없었지만, 허 참 어떻게 한꺼번에 이렇게 줄 수 있겠느냐, 충분히 증거로 뒷받침되는 것이냐, 혹 재판 과정에서 번복될 가능성은 없느냐 하며 의아해 했다. 수사 결과를 의심한 적은 없으나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 많은 돈이 이런 식으로 건너갔으니.

대선 자금 수사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은 없었나?
초기에는 정치권에서 전화도 하고 재계에서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도 있다. 수사팀에도 여러 경로를 거쳐 다양한 희망 사항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거기에 굴복하느냐 굴복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신경 쓰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고 수사팀을 독려했다. 수사팀도 그런 각오를 가졌기 때문에 수사가 위축된 경우는 없었다.

당시 이회창씨는 왜 소환하지 않았나?
직접 부르는 것 외에 할 것은 다 했다. 의심은 가지만 모금에 관여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그를 기소할 수는 없었다. 다만 대선 이후 남은 대선 자금을 보관하는 문제에 이씨가 관여했지만 처벌할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형평성 문제가 고려되었던 것은 아닌가?
(한참 침묵한 후) 글쎄···.

여권에서는 검찰권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검찰의 힘이 커졌다고 보지 않는다. 묵혀두었던 비리를 상대로 광범위하게 수사하면서 법률상 권한을 사용하다 보니 정치권과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이 여럿 다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피해 본 사람들, 섭섭해 하는 사람이 많다.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반대하나?
그렇다. 중수부 활동이 필요 없게 된다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거악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소지가 많다.

거악?
권력과 기업의 유착, 공기업의 구조적인 비리, 토착적인 비리들이다.

에버랜드 사건, 삼성 SDI 도청 사건 등 삼성과 관련된 사건에는 검찰의 칼이 무뎌진다는 비판이 있다.
검찰이 유독 삼성에 대해서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삼성SDI 사건 같은 경우 상세한 내용을 보고받아 잘 안다. 어떻게든 찾아내라, 칼날이 무뎌졌다는 비판을 받을 것 아니냐고 담당자를 다그친 적도 있다. 서울지검장이 보고할 때 그 문제만 나오면 ‘아무리 해도 안 나옵니다’라며 신경 과민이 될 정도였다. 대기업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과거처럼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들을 동원해 치밀한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뚫고 나아가기가 어렵다.

정치를 할 생각은 없나?
전혀 없다. 성격에 안 맞다.

퇴임 이후 계획은?
우선 아내와 가보고 싶은 데 다니면서 뭘 할 것인지 생각할 것이다. 제일 보고 싶은 곳이 남도 매화밭이다. 또 벚꽃도 보고 싶고, 땅끝 마을도 가보고 싶다. 맛있는 남도 음식도 마음껏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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