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둥권, 전문가에서 저격수까지 총출동 ··· 실제 경쟁력은 미지수

16대 총선의 승부는 수도권에서 결판 난다. 여야 각당의 텃밭이야 미미한 변수만 가능할 뿐 이미 게임은 짜인 각본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도권은 어느 당도 압승을 자신할 수 없는 지역. 더구나 전체 지역구 의석의 42%에 달하는 97석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따라서 여야는 사활을 건 수도권 혈투를 준비 중이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은 바람 전략이 통하는 곳이다.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여야는 똑같이 이번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역할을 386 세대에게 맡겼다. 상대 당 중진 의원에게 386 세대의 젊은 피를 맞붙여 ‘바꿔’ 바람을 일으키고, 전문성을 갖춘 정치 신인들을 대거 투입해 득표력을 높인다는 것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통적인 전략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수도권에만 30대 후보14명을 출전시킨다. 한나라당도 이에 뒤질세라 30대 후보를 12명 내세웠다. 이 숫자는 386 세대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40대 초반 정치 신인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늘어난다. 새로 출범하는 민주국민당도 여야 공천에서 탈락한 386 세대들을 대거 영입한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가히 수도권은 ‘젊은 피’ 대 ‘묵은 피’의 대결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여야, ‘386 후보’ 집중 지원 검토

젊은 피 바람을 위한 각당의 수도권 선거 전략도 볼 만하다. 민주당은 수도권의 젊은 유권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하고, 네티즌 앵커와 모니터 요원을 공모하는 등 사이버 선거전을 준비 중이다. 한나라당도 사이버 대변인을 모집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와 함께 386 세대가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금과 조직이 필수라는 판단에 따라 여야는 이들을 집중 지원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운동권 출신 젊은 피들을 대거 현장에 내보냈다. 이 가운데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이인영·임종석·우상호 씨 등 전대협 3총사의 생환 여부이다.

초대 전대협 의장을 지낸 이인영씨는 구로 갑에 출전한다. 전대협 출신 선두 주자로서 가장 먼저 민주당에 입성한 이씨는 그동안 당의 386 세대 전진 배치를 관철하는 데 힘을 보탰다. 당이 비례 대표로 남아 수도권의 젊은 피 바람을 일으키는 ‘홍보 특사’ 역을 맡아 주기를 원했으나 본인이 지역구 출마를 원했다. 상대는 15대 때 정한용 의원에게 일격을 당한 이후 4년 동안 절치부심해온 한나라당 김기배 전 의원. 이씨는 개혁 세력 대 구정치인의 대결로 몰고 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인영씨와 함께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씨도 성동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상대는 한나라당 거물 중진인 이세기 의원. 임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지역에 ‘푸른정치 2000’이라는 사무실을 내고 지역 사업을 벌여 왔다. 한때 김한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곳에 사무실을 내는 바람에 공천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으나, 김씨가 비례 대표로 물러나면서 무난히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지도가 30%선에 머무르고 있고, 지역 관리를 잘하기로 이름난 이세기 의원이 버티고 있어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처지이다.
서울 서대문 갑에 출전하는 우상호씨는 386 세대끼리 한판 승부를 펼친다. 전대협 1기 출신인 우씨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상대인 한나라당 이성헌씨는 총학생회가 부활되기 전인 1984년 연세대 총학생장을 지냈다. 우씨는 예선에서 김상현 의원을 누른 저력을 계속 발휘해서 15대 때 김상현 후보에게 불과 6백여표 차이로 석패한 이성헌 후보와 한판 승부를 겨루겠다는 자세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이씨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지만, 민주당의 조직표가 가세한다면 우씨와 이씨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민주국민당 참여를 공식 선언한 김상현 민주당 고문이 이곳에서 출마한다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밖에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386 후보로는 허인회(동대문 을)·김윤태(마포 갑) 씨 등이 나서고 있다. 5선 중진인 한나라당 김영구 의원과 맞서 싸우게 될 허인회씨(민주당)는 1980∼1990년대를 관통했던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터넷 사업가라는 명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마포 갑에서 한나라당의 터주 대감 박명환 의원과 맞붙는 김윤태씨는 영국 노동당의 정치 노선인 ‘제3의 길’을 이론적으로 창시한 앤서니 기든스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점을 내세우며 DJ 정부의 이론적 개혁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인천 보궐 선거에 나섰던 송영길 변호사(인천 계양)와 청와대 국장 출신인 윤호중씨(경기 구리)도 운동권 출신 386 후보로 분류된다.

고진화(영등포 갑)·정태근(성북 갑) 씨는 서울에서 나서는 한나라당의 운동권 출신 젊은 피 후보. 각각 성균관대 총학생회장과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고씨와 정씨는 최근까지도 재야 386 세력과 연계의 끈을 유지해 왔고, 한나라당 젊은 피 후보들 중 대표적인 개혁 인사로 꼽힌다. 민주당의 386 후보들이 1987년 대선 당시 ‘비판적 지지’ 그룹으로 묶여 있던 사람들이라면 이들은 후보단일화 운동을 펼쳤다는 차이점이 있다. 13년 전의 정치적 견해 차이가 현재까지도 당을 달리하는 뿌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고진화씨가 맞설 상대는 민주당 김명섭 의원. 김의원은 15대 때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되어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김의원을 응징하는 역할을 고씨에게 부여한 셈이다. 영등포 갑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지만 최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새롭게 들어서면서 표심의 변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고씨의 판단이다. 고씨는 젊은 개혁 후보와 구정치인의 싸움으로 몰고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정태근씨는 민주당 유재건 의원을 맞아 개혁몰이를 준비하고 있다. 성북 갑 지역이 민주당 아성이고, 유재건 의원이 상대적으로 구정치인 냄새가 강하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지만, 정씨는 수도권에 젊은 피 바람이 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밖에도 오경훈(양천 을)·박종운(경기 부천 오정) 씨 등이 한나라당 옷을 입고 출전하는 운동권 386 세대들. 15대 때 이미 정치에 입문한 김영춘(서울 광진 갑)·김부겸(경기 군포)·김성식(서울 관악 갑) 씨도 운동권 출신 386 세대로 분류된다.
젊은 피의 또 다른 ‘동맥’ 전문가 그룹
운동권 출신 386 세대와 함께 젊은 피의 양대 산맥으로 분류되는 그룹이 전문가 집단이다. 여야는 특히 이번 선거에서 젊은 전문가 집단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여 왔다. 민주당은 삼환컨설팅 대표를 지낸 이승엽씨(동작 갑), 재경부 서기관 출신 배선영씨(서초 갑),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정성호(경기 동두천·양주)·김영술(송파 갑)·노관규(강동 갑) 변호사 등을 후보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이들 가운데 이승엽씨와 이종걸·정성호 변호사 등의 승리를 기대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금융 전문가 이씨는 경제통임을 앞세워 4선인 서청원 의원을 꺾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민변 출신인 이종걸·정성호 변호사도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밖에도 민주당은 청와대 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씨를 금천에서 한나라당 이우재 의원과 맞서게 했다.

민주당에 맞서 한나라당은 오세훈(강남 을)·원희룡(양천 갑) 변호사와 총리실 공보보좌관을 지낸 정두언씨(서대문 을), 미국에서 노동 문제를 전공한 공인노무사 출신 이승철씨(구로 을) 등으로 전문가 후보군을 짰다.

오세훈·원희룡 변호사는 여야의 386 영입 작업이 한창이던 올해 2월 초까지 여야가 모두 군침을 흘렸던 386 세대의 ‘블루칩’. 두 사람은 한나라당이 수도권에 출전시킨 386 세대 가운데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꼽히고 있다. 윈희룡 변호사는 박범진 의원의 지역 발전 논리를 차단하기 위해 차세대 주자 이미지를 부각한다는 계획이다. 이웃인 양천 을에서 출마하는 오경훈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파트너십을 발휘하면서 세대 교체 바람을 일으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오세훈 변호사는 그동안 방송에 출연해서 쌓아온 친근한 이미지와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한 개혁적 이미지가 유권자들을 휘어잡을 힘으로 꼽힌다.

한나라당이 내세운 특이한 386 세대로는 미스코리아 출신 한승민씨(동대문 갑)가 있다. 경제학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는 한씨는 한나라당이 민주당 김희선씨에 맞불을 놓을 ‘여(女)-여(女)’ 카드로 준비한 인물이다. 또한 15대에 이어 안양 동안에서 이석현 의원과 재대결을 펼치게 된 심재철씨와 고양 덕양 을에 출마하는 김용수 부대변인도 수도권 바람을 일으킬 386 세대로 한나라당이 지목하는 후보들이다.

386 세대가 대거 출전하자 수도권 선거는 전에 보지 못한 몇 가지 특성을 보일 전망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신진 인사 대 중진 정치인의 대결 양상이 곳곳에서 펼쳐지게 된다는 점이다.

신구 대결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곳은 성동(임종석-이세기), 동대문 을(허인회-김영구), 마포 갑(김윤태-박명환), 경기 동두천·양주(정성호-목요상), 양천 갑(원희룡-박범진), 영등포 갑(고진화-김명섭), 경기도 부천 오정(박종운-최선영)이다.

일부 지역에는 저격수로 나서

수도권 총선 무대에서 중진과 젊은 피 사이의 대결 못지 않게 눈길을 끄는 것이 저격수들의 활동이다.

민주당은 DJ 저격수로 맹위를 떨친 이부영·이신범 의원에게 의정부 법조 비리 수사 검사로 맹위를 떨친 노관규 변호사와 김현철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파헤친 김성호 전 <한겨레 designtimesp=9895> 기자를 저격수로 붙였다. 한나라당도 교육부장관을 지낸 이해찬 의원의 저격수로 현직 중학교 교사 출신인 권태엽씨를 뽑았다. 민주당은 김성호씨를 통해 이신범 의원이 김현철 인맥임을 집중 부각하고, 노관규 변호사를 통해서는 선거판을 정치 비리 쟁점으로 몰고 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권태엽씨를 앞세워 현정부의 교육 정책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질 작정이다.

이처럼 여야는 386 후보들을 전위 부대로 내세운 수도권에서 서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생환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처럼 젊은 후보들이 대거 공천받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각당은 이들의 성적표를 미리 예상하는 것을 주저한다. 여야 모두 3∼4명 정도씩이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선거는 현실이다. 서울에서 상대 당 중진 의원과 맞서 싸우고 있는 한 젊은 피 후보는 “솔직히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겠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대거 공천을 받은 데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이 큰 힘을 발휘했다. 1월까지만 해도 여야 모두 이들의 경쟁력을 의문시했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정치권에 개혁 바람을 몰고 왔고, 386 세대들은 그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다. 시민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시작된 젊은 피 붐이 실제로 꽃피기 위해서는 이들이 선거라는 현실 게임의 장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어야 한다. 결전의 날은 이제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