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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구입

디지털 카메라(디카)를 산 뒤 때늦게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벤처 기업에 다니는 박 아무개씨(35)도 그랬다. 2년 전 그는 화소 2백50만개짜리 디카를 어렵사리 구입했다. 그런데 셔터를 누르자마자 불만이 불거졌다. 사진 상태가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이다. 그는 “너무 성급했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화소 수가 많은 제품을 살 걸 그랬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그 정도 후회는 약과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신기술로 치장한 디카가 자고 일어나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도 곳곳에서 뒤떨어진 디자인과 화소 수, 처진 기능 때문에 내쉬는 장탄식 소리가 들린다. 디카를 애물이 안 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짧고 명료하다. “좀더 꼼꼼히 살피고, 좀더 멀리 내다보고 사라!”

그들의 충고를 되새기며 ‘4주 완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디카 구입에 나섰다. 3박4일간 다리품을 팔며 돌아다닌 결과, 디자인과 기능이 뛰어나면서 값이 싼 제품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카메라가 특별한 행사를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라, 일상과 현재를 표현하는 기계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단했지만 의미 있었던 ‘짧은 여정’을 소개한다.

우선 기종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과 책자를 뒤지고, 주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렇지만 귀에 쏙, 눈에 확 들어오는 모델이 없었다. 한 친구는 200만∼400만 화소 정도면 ‘어떤 제품이라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글쎄, 나는 카메라만큼은 좀 까다롭게 고르고 싶었다. 수동 카메라 니콘 FM2를 오랫동안 써온 탓일까. 디카는 왠지 가볍고 표피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도구처럼 보였다. 때문에 선명하면서도 좀 따뜻한 느낌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디카를 갖고 싶었다.

결국 찾다찾다 역부족을 느끼고 <디지털 카메라 신입문>(영진닷컴) 저자 정윤희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씨는 대중에게 디카의 매력을 수년째 설파하고 다니는 ‘디카 전도사’. 그에게 지금까지 나온 디카 가운데 쓸 만한 제품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디카는 그렇게 고르는 게 아니에요. 뭘 찍으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생각해 보세요.” 집에서 쓸 것인지,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쓸 것인지, 나들이용으로 쓸 것인지 생각해 보고, 들고 다니기 편한 것이 좋은지, 녹음도 되고 동영상도 찍는 것이 좋은지, 모양이 예쁜 것이 좋은지 고민해 보라는 말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왜 디카를 사려고 했더라. 단지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갑작스런 취재 현장 사진과 가족 사진, 풍경 사진 등을 찍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자, 정씨는 가족·풍경 사진을 찍는 데는 300만 안팎의 화소면 되지만 취재용으로 쓰려면 적어도 400만∼500만 화소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으로 일단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었다.

이제 어느 회사 디카를 살지 결정해야 했다. 먼저 각 회사 디카의 장단점을 비교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자료를 만든 사람은 매우 주관적인 견해라고 전제한 뒤, 각사 디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올림푸스 디카들은 생각보다 사진이 더 환하게 나온다. 반면 캐논은 인물 사진이 잘 나오고, 소니는 붉은색 보정을 많이 해야 한다. 니콘은 풍경과 접사 촬영에 유리하고, 삼성 케녹스 V 시리즈는 건전지가 오래 가는 장점이 있다.’

확인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는 ‘캐논은 인물 사진이 잘 나온다’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래도 취재용은 인물을 많이 찍어야 하므로 캐논이 유리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회사 디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차이가 얼마 되지 않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1차 후보로 선정한 디카가 올림푸스 C-450Z, 니콘 COOLPIX 4300, 캐논 PowerShot A80, 소니 F77A, 삼성 Digimax V4였다.

화소 400만대인 이들 제품의 기능·디자인·크기·저장 방식 등을 살펴보았더니, 내 눈에는 모두 엇비슷했다. 가격 비교 사이트 베스트바이어(www.bb.co.kr)에서 판매가를 검색해 보았다. 예상대로 파는 곳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예컨대 올림푸스 C-450Z은 최저 41만2천원에서 최고 60여만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니콘 COOLPIX 4300은 최저 42만9천원에서 최고 60여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다른 제품도 사정이 비슷했다(캐논 PowerShot A80:45만7천∼60여만 원, 소니 F77A:38만9천∼60여만 원, 삼성 Digimax V4:45만2천∼60여만 원).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에 올라온 제품 사양과 사용 후기를 찾아 읽어 보았다. 그런데 초보 디카족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섞여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나름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디카가 ‘같은 제품이라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품이냐, 병행수입품이냐에 따라 가격과 애프터 서비스가 현격히 달랐다.

정품은 한국 지사가 본사에서 직접 수입한 제품을 말한다. 반면 병행수입품은 본사에서 수입은 하되, 지사가 아닌 국내 업체가 수입한 제품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제품이지만 애프터 서비스와 가격이 달라진다. 즉 정품은 국내 공식 애프터서비스센터에서 1년 동안 무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병행수입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대신 공식 대리점이나 판매처에서 유상으로 수리할 수 있다).

가격도 제품에 따라 크게 1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디카 할인점 디카디시에 따르면, 캐논 PowerShot A80의 경우 정품이 51만원이고, 병행수입품은 44만원이다. 니콘 COOLPIX 4300도 정품은 48만원인데, 병행수입품은 42만원이다. 문제는 정품과 병행수입품을 구분하지 않고 디카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싼 맛에 샀다가 고장이 난 뒤 낭패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장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병행수입품을 써도 지장이 없다. 정품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요령은 간단하다. 안내 책자가 한글로 되어 있거나 카메라에 ‘MIC’딱지가 붙어 있으면 정품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도 좀더 몸에 맞는 디카를 사려면 직접 제품을 보고 고르는 것이 좋다. 그만큼 다리품을 많이 팔라는 말이다. 서울 남대문시장·용산전자상가·테크노마트가 소문 난 디카 시장. 최근에는 서울 코엑스몰에도 예비 디카족이 몰린다. 삼성·소니·올림푸스가 ‘디카 체험관’과 매장을 만들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마지막 후보로 꼽은 디카는 삼성 V4와 캐논 PowerShot A80이었다. 두 제품은 렌즈 밝기(F2.8∼F5.0), 액정 모니터 크기(1.5인치), 최고 셔터 속도(2000분의 1초)가 비슷했다(제품 설명 참조). 고민을 거듭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던 중에, 한 동료로부터 결정적인 정보를 들었다. 그는 PowerShot A80이 수동 기능이 잘 되어 있고, 캐논이 아무래도 인물 사진이 더 잘 나온다고 말했다.

마침내 최종 선택한 제품은 캐논 PowerShot A80. 아직 이 디카를 잘 선택했다는 확신은 없다.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디카를 만만하게 보지만, 나는 다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잔뜩 긴장하고 있다.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앞으로 소개할 ‘4주 완성 프로젝트’ 2∼4회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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