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분석할 수 있나요? ”

미술심리치료사 박은숙씨(31)가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질문이 싫다. 그림을 심리 테스트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빨간 색을 거칠게 쓰면 공격성이 있고, 그림이 한쪽에 쏠려 있으면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고, 눈·코·입을 안 그리면 죄 의식이 심하다.’

대신 박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개인적인 경험과 상징으로 가득찬 세계이며, 사람들이 겉을 보고 진단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 치유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나는 그 과정을 돕는다.”

국내에서는 이름이 낯선 미술심리치료사는, 미국에서 50년대 이후 전문화한 직업이다. 미국에서는 임상심리학자·정신과의사·미술심리치료사 등이 한 팀이 되어 치료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의식이 정착하지 못했다. 그가 민예총에서 마련한 미술심리치료사 전문 과정 강의에 선뜻 응한 이유다.

박씨가 미술심리치료사 길을 걷게 된 데는 곡절이 많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화가이고, 그도 그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허다한 예술 이론을 접했지만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 그림을 그리는지, 왜 사는지.’ 출구를 찾지 못한 박씨는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 미술심리치료가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길을 정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환자들과 부대끼는 것은 더 어려웠다. 방바닥에서 등을 떼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무너진 그는, 미술 심리 치료에 기댔다. 전화위복.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줄곧 고민했던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까지 덤으로 얻었다.

“존재 자체가 부조리하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라도 계속 살려면, 꿈이나 희망 따위 거짓말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예술이나 종교도 (좋은) 거짓말이죠. 문제는 종교나 예술이 그런 통합적 기능을 잃어간다는 거에요.”

그는 환자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직업 화가들이 잊기 쉬운 그림의 본원적인 치유 능력을 확인했다.

박씨는 미술심리치료사의 요건으로 자기 성찰력과 남다른 감정 이입 능력, 그리고 그림에 대한 관심을 꼽는다. 남의 생각을 헤집고 재는 분석력이 아닌, 공감하고 껴안을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꼭 덧붙이는 것이 있다. ‘존재의 심연에 부딪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포기하라.’ 치료사란, 환자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앓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