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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숨기면 제2 박종철 사건 될 것”
조폐공사 노사 분규 진상 조사에 나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공공 부문의 졸속·실적주의 구조 조정의 대표적 사례라고 보고 구조 조정 방향을 바로잡자는 목적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분규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분신까지 했고 많은 구속자가 나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7월 회사측이 경영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옥천조폐창을 경산조폐창으로 통폐합하면 비용이 8백억원 정도 들지만 옥천창 매각 대금은 30억원 정도에 불과해 자금 조달이 어렵고 지속적인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어 경쟁력이 더욱 악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회사측은 통폐합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사장이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진형구 공안부장의 말을 듣고 의문이 풀렸습니다. 폭탄주가 진상 규명 수훈 갑입니다.
검찰에서는 노조의 파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도 나오던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폐공사 노조는 본래 온건 합리 노선을 걷는 쪽입니다. 공공 부문 노조여서 파업을 하더라도 대개 시한부로 합니다. 지난해 9월 회사측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아 3일간 시한부 파업을 하다가 회사측이 상여금을 지불하자마자 파업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측이 막바로 주제를 통폐합으로 바꿔 노조를 벼랑으로 몰고간 것이지요. 노조가 파업을 푼 시점부터 검찰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왜 하필 조폐공사 노조를 찍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올봄 노조 순회 강연을 하면서 정부가 공공 부문을 정리할 때 조폐공사 → 지하철 → 한국통신 노조 순으로 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조폐공사 조합원 규모가 3천명 정도여서 시범 케이스 제물로 삼기에 딱 알맞습니다. 규모가 너무 크면 부작용이 있고, 작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게다가 공장이 세 군데 흩어져 있어 각개격파가 가능합니다. 조직력도 있어 꽤 버티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공안부장으로서는 강희복 사장이 경복고 후배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터놓고 얘기하기 좋은 상대이니까요.
지하철 노조와 한국통신 노조의 예봉을 꺾기 위해 조폐공사 노조를 먼저 쳤다는 얘기군요.
역시 최종 목표는 공공 부문의 주력인 지하철과 한국통신 노조였을 것입니다. 이 두 군데를 제압해야 공공 부문 정리가 끝나거든요. 그 중 덩지가 제일 큰 것이 노조원이 1만8천명인 한국통신 노조인데, 여기를 먼저 치면 역전의 용사인 지하철 노조가 반드시 합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조폐공사 노조를 두들겨 기를 꺾어놓고 지하철→한국통신 순으로 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조폐공사 노조가 예상 외로 빨리 (파업을 풀고 현장에) 들어가서 싸우기로 노선을 정하는 바람에 작전이 모두 어그러졌다고 봅니다. 조폐공사 관계자들과 진공안부장의 얘기가 일치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분이 일치한다는 말인가요?
지난 1월16일 파업을 끝내고 협상 자리에서, 노조원들이 통폐합 결정을 한 지가 언제인데 교통편이나 작업 준비가 이렇게 안되어 있을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옥천창의 회사 관계자들은 ‘노조가 이렇게 빨리 복귀할 줄 몰랐다’고 얘기했습니다. 경산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조원들이 숙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 대해 항의하자 회사 관계자가 ‘예상 밖으로 노조가 빨리 파업을 풀어 준비를 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진공안부장도 취중에 같은 말을 했잖습니까. 관계자대책회의라도 갖지 않고서야 어떻게 서로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노조의 파업에도 검찰이 개입하지 않았는지 의혹이 일고 있는데요.
냄새가 나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만도기계 노조의 경우 빌미를 잡히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합법적인 과정을 밟아 파업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찰을 투입해 강경 진압을 했습니다. 강원산업도 주시 대상입니다. 완전한 합법 파업을 했는데도 회사는 대화를 거부하고 직장 폐쇄를 한 상태입니다. 노사 간에 충돌이 벌어지지도 않은 초기에 조합 간부 7명에게 구속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배후에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노조가 강경해 노사 분규가 격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뒤를 봐줄 때 회사가 강경해지고, 그러면 분규가 거칠어지는 겁니다.
노동계는 국민의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아닙니까?
DJ 정부 들어 YS 정부 때보다도 노동자 구속자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노조가 노사정위에도 참여하고 정리해고법 통과에도 협조했는데 정부는 합의 사항마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 온건파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어요. 지난해부터 진공안팀―본인은 신공안이 아니라 진공안이라고 한답디다―이 초강경으로 몰아붙이면서 이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권이 막가파식 신자유주의라면 현정권은 화장한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나마 화장도 벗겨지고 있지만. DJ가 과도하게 검찰에 의존하다 보니 공안 검찰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지요. 오죽 교만해지고 경계심이 풀렸으면, 얼마나 일상적으로 공작이 반복되었으면 대검 공안부장이란 사람이 폭탄주 먹고 겁도 없이 입을 놀리겠습니까. 지어내긴 뭐가 지어낸 얘기입니까. 다 사실이지.
그렇다고 강경 투쟁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수습되어야 하겠습니까?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조합원들은 갇혀 있는데 강사장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생생하잖습니까. 조폐창 통폐합도 백지화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엉터리 구조 조정을 했는가 하면, 옥천 조폐창을 아직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1백30명이나 동원해서 말입니다. 통폐합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발상인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무엇보다도 공안 당국의 노동 개입이 근절되어야 합니다. 군사 독재 잔재라고 해서 없앴던 공안대책협의회를 지난 3월 대통령령으로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서 부활시키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무슨 짓입니까. 공안대책협의회를 당장 해체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공식 입장은 술 먹고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진상 규명이 쉽겠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부천 성고문과 박종철 고문 치사를 떠올렸습니다. 그 때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다가 문제가 커졌거든요. 또다시 눈 가리고 아웅하면 검찰의 파멸, 나아가서는 정권의 위기가 닥칩니다. 이래 갖고서야 이 정권이 개혁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웃어버리지요. DJ 정부에 아직도 기회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