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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한국 사회에서 담론을 과도하게 생산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연구 성과를 질적으로 평가하는 정교한 시스템은 없다.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은 전문가도 아니며 부패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라고 사람들이 욕한다. 그런 욕을 먹어도 쌀 정도로 교수는 ‘더러운 직업인’이 되어버렸다.

사건 하나. 이화여대 체육학과 교수가 입학 부정의 대가로 돈을 5천만원 받았다고 했다. 교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발견된 엄청난 수의 가방들, 정말 가관이었다. 외국 여행 갈 때 쓰는 대형 가방 안에서, 이전에 뇌물을 받을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방들이 방 안 가득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돈이 빠져나간 빈 가방들의 뻔뻔함이라니. 접히고 또 접혀 뒹군다. 큰 것 안에 조금 작은 것이, 그것 안에 더 작은 것들이 즐비한 더러운 풍경. 한나라당이 차떼기로 돈을 받더니, 교수들은 ‘가방떼기’를 한 셈이다.

사건 둘. 지난 1월 초 연세대 독문과의 아무개 강사가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교수들이 학술진흥재단 연구비 일부를 횡령했다고 고발했다. 그리고 지난 2월9일 학술진흥재단이 교육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세대 독문과 소속 일부 교수가 연구비 1억2천여만원을 지급 목적이 아닌 곳에 부당하게 사용했다”. 그들은 개인적 용도로 연구비를 유용하거나 부설 연구소 경비로 사용했으며, 연구 기간이 끝난 박사급 연구원 등에게 돈을 나누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횡령 혐의를 고발했던 강사는 다음 학기 강의를 박탈당했단다.

혀를 찰 일이다. 그런데도 해당 대학이 어떤 구체적인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부패가 없어지리라는 전망도 밝지 않다. 이제까지 대학의 관례를 보면 연구비를 유용한 교수들에 대해 해임 등의 강력한 조처가 취해진 일도 거의 없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학술진흥재단은 그런 교수들에 대해 기껏해야 3~4년 동안 연구비 신청을 금지한다는 규정만을 두고 있을 뿐이니, 흐물흐물한 대응이 대학 사회를 개혁이 필요한 중요 집단의 하나로 찍히게 만든 셈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교수 연구비 유용 사건으로 그치지 않는 듯하다. 연구비 횡령 사건이 일어나던 때 연세대 총장이던 김우식 교수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 지지자들 중에서도 실망이 적지 않다. 몇몇 ‘정치적인’ 처신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대학과 관련해서만 말하자면, 대학 비리조차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개혁 정부의 청와대 인사와 관리를 맡기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교수연구비 횡령 사건에 대해 총장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경우라면 총장도 마땅히 응분의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어떤 유명 대학 총장도 그런 책임을 지지는 않았고, 아마도 그 이유로 김우식 전 총장도 대충 넘어가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 도의적 책임 이상의 시스템 문제가 있다. 그런 비슷한 연구비 유용과 횡령이 대학에서 이제까지 전혀 없기는커녕 오히려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수들은 한국 사회에서 담론을 과도하게 생산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연구 성과를 질적으로 평가하는 정교한 시스템은 없다. 학술진흥재단은 학회지 게재라는 기준에 따라 평가하지만, 그 평가 방식은 사실 ‘지적 사기’에 가깝다. 그런 체제에서는 인용은 착실하게 하지만 내용은 그저 보통인 이삼류 논문들만 양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은 전문가도 아니며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냥 썩어문드러진다면 그나마 다행이건만! 그 와중에서 가방끈 길이로 허풍을 떨고, 가방 숫자를 세고 지갑 두께를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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