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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하락·공화당의 발목 잡기 탓에 ‘골머리’
그러나 유고 정부가 철군 협정을 제대로 준수할지, 세르비아계 군인들의 잔학 행위를 피해 코소보를 떠난 알바니아계 난민 86만명이 안전하게 귀환할지,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 나토의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된 유고와 인근 발칸 지역을 어떻게 복구할지, 전쟁 원인 제공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등 많은 난제가 코소보 앞날에 가로놓여 있다. 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밀로셰비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21일까지 유고 연방군이 코소보에서 완전 철수하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나토 5개국이 주축이 되어 임시 정부를 구성한 뒤 분할 통치한다. 지난 2월 유고와 맺었다 깨진 랑부예 협정에서는, 9개월 동안 유럽안보협력기구가 지원해 잠정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고 3년내 주민 투표를 실시한다고 명시했지만, 이번 새 평화안에는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코소보에 투입되는 4만8천여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영국(1만3천명), 미국(7천명), 프랑스(7천명), 독일(8천명), 이탈리아(5천명)에서 파견되며, 러시아도 2천~만 명을 파견한다.
평화유지군은 코소보에 진입하자마자 우선 주요 지휘 거점을 접수하고 코소보 접경 세르비아 내부에 설치된 완충 지역 4.8㎞를 장악하게 된다. 특히 나토 주력 5개국은 코소보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관할하게 되는데, 군사 지휘는 유엔 감독 아래 나토가 맡는다.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러시아는 코소보 북부 지역을 관할하기를 희망하지만, 이는 코소보를 분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유고 연방 정부는 최악의 경우 코소보가 분할되더라도 세르비아 민족의 성지이자 광산 자원이 풍부한 북부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인종 청소 주범으로 꼽히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대한 전범 처리도 관심거리다. 나토는 곧 국제사법재판소 조사단을 코소보에 파견해 그를 포함한 유고 정부 관리 5명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 5월22일 나토는 밀로셰비치와 밀루티모비치 세르비아 대통령, 오이다니치 유고 연방군 총사령관 등 5명을 기소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나토 주력 5개국이 구성하는 임시 정부가 코소보에 들어서고 평화유지군이 배치되면 난민의 귀환이 시작될 전망이나, 나토는 서두르지 않을 방침이다. 코소보 곳곳에 설치된 지뢰부터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토는 코소보 산악 곳곳에 세르비아계 군인 일부가 남아 게릴라식 보복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때문에 치안을 완전히 확보하기 전에는 섣불리 난민을 귀환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78일 간에 걸친 나토 공습으로 거의 잿더미가 된 유고와 인근 발칸 지역을 복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복구 비용은 3백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직·간접으로 피해를 본 알바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까지 합치면 2백억 달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유고 관영 탄유그 통신에 따르면,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만 나토 공습으로 가옥 9백70채, 학교 59개, 보육원 48개가 파괴되었으며, 유고 전역의 교량·고속도로·정유소·공장·발전소 등 산업 기반 전체가 무너졌다. 유고 정부는 주요 공장 피해액만 1천8백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유고의 산업 생산이 거의 파괴됨에 따라 이미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실업 상태다. 유고 복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 복구를 위해 나왔던 ‘마셜 플랜’에 버금갈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나토 공습을 주도한 미국도 전쟁이 끝나 홀가분한 입장이다. 사실 지난 3월24일 나토가 유고 공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도박’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입한 지 78일 만에 전쟁이 끝나자, 클린턴의 행동은 도박이 아니라 ‘용단’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고전쟁 종식에 관한 평화협정이 서명된 지 수분 만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상군 투입을 주장했던 공화당 지도부는 코소보 평화유지군과 관련한 전비 지출을 거부하며 클린턴 발목 잡기에 나섰다. 공화당 소속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을 포함한 일단의 매파 의원들은 지난 9일 코소보 평화유지군 주둔 비용 1백50억 달러가 포함된 군비 지출 승인안을 거부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코소보 평화 유지 비용을 염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총 55억 달러가 투입된 유고전쟁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도 끝나게 된 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미국민 대다수가 이번 전쟁이 국익과 별 상관이 없다고 믿는 판에, 만일 지상군까지 투입해 제2의 베트남전꼴이 될 경우 클린턴이 레임 덕에 빠지는 것은 물론 내년 대통령 선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가 공화당 지도부의 끈질긴 종용과 일부 나토 회원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상군 투입을 거부한 것은 이같은 판단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나토의 승리를 곧바로 클린턴의 정치적 승리와 연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미국내 여론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저명한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 앤드로 코헛 씨는 “미국인들이 클린턴 대통령의 무력 개입 결정이 옳다고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국익이 걸린 중요한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미국 의회, 미군 주둔비 1백50억 달러 지출 거부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이 6월 초 공동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탄핵 절차가 이루어진 와중에서도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유고전쟁 기간에는 50%를 간신히 넘었다. 코소보 사태에 대한 미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낮은지는 이를 보도한 미국 3대 방송사의 평균 보도 시간에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들 3개 사의 총 보도 시간은 2백15분이었지만, 5월 중순께는 55분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티븐 헤스 연구원의 분석이다.
현재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코소보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투입할 미군 7천명에 대한 주둔 비용과 유고 지역 복구 원조 비용을 어떻게 염출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줄을 쥔 의회가 호락호락 승낙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클린턴 행정부가 추산하는 미국 부담 몫은 줄잡아 1백50억 달러에 이른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번에 투입될 미군 7천명을 언제 철수시키느냐도 고민거리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군을 투입하더라도 이들의 철수 일정을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반 전 보스니아 평화안이 체결된 뒤 1년 시한으로 미군 6천명을 투입했지만, 지금까지도 단 1명도 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탈냉전 이후 유럽 최대 ‘인종 청소장’으로 변했던 코소보는 지난 9일을 기점으로 평화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물러나지 않고 유고 대통령으로 계속 건재한 이상 제2의 코소보 사태는 재발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