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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교사평가제 도입 놓고 찬반 갈려 학부모단체, ‘부적격자 퇴출’ 대환영
15년 경력인 김 아무개 교사는 “사정을 모르는 학부모들이 ‘부실 교사는 교단을 떠나라’고 요구하니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숙제 검사에 일기 봐주기, 점심 시간에는 식사 지도하기…. 1주일에 44시간 근무하면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하느라 수업 준비할 시간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김교사는 “지난 1년 동안 작성한 공문서가 아홉 가지인데 한 가지에 4백여 쪽씩 무려 3천6백여 쪽이나 된다. 교사 평가를 말하기 전에 우선 교사의 잡무부터 줄여 달라”고 호소했다.
교직에 들어선 지 25년째인 최 아무개씨는 “캐나다의 교육청은 교사들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는 철저한 교육지원센터라고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먼저 변해야 한다”라고 김교사의 주장에 맞장구를 쳤다.
교직 생활 5년째인 젊은 여교사 이 아무개씨도 교사 평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씨는 “지금도 교사를 평가하는 근평(근무평정) 제도가 있지만 교장이나 교감으로 승진하려는 교사에게나 필요하다. 열심히 뛰는 젊은 교사는 오히려 최하위 점수만 받고 있다. 교사 평가를 하려면 교장·교감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아무개 교사의 의견은 달랐다. 최씨는 “나도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인데 아이들 얘기 듣다 보면 ‘부적격 교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사평가제는 시기가 문제일 뿐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졸업식이 열린 서울 강남구 ㅅ고등학교. 전교조 소속인 김 아무개씨(45)는 “교사에 대해 다면평가제를 실시하면 학생들이 인기 투표를 할 것이다. 시험에 나올 문제를 꼭 찍어주는 교사가 성과급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기술 과목을 가르치는 박 아무개씨(42)는 “동료 교사끼리 서로를 평가하는 것은 괜찮다고 보지만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교실 밖에서는 찬성론이 우세했다. 졸업식장을 찾은 학부모 문 아무개씨(48)는 “딸에게 들으니 요즘 학기말이라고 수업 시간 종료 5분 전에 나타나는 선생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더라. 실력 없고 게으른 교사는 교단에서 당장 쫓아내야 한다”라며 교사평가제 도입을 환영했다.
교사평가제가 교직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2일 안병영 교육 부총리가 “교사의 자질이 공교육의 원천인 만큼 교사들이 긴장하고 교육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원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라고 말한 뒤부터다. 만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고 있는 교사들에게 교사평가제는 메가톤급 핵폭탄이다. ‘철밥통’이라는 교사들도 ‘부적격 교사’로 평가받으면 교단에서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평가제에 대한 교단 분위기는 둘로 나뉜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은 반대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좋은 교사 운동’처럼 자율적으로 교사들이 먼저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자고 하는 교사 모임도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학부모 단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고 있다.
평소 교장·교감을 포함하는 교원평가제 도입과 부적격 교사 퇴출을 주장해온 ‘사단법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학부모와 학생도 평가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인옥 참교육전국학부모회 사무처장은 “교사평가제로 부적격 교사를 가려내고, 교육력 회복이 여의치 않은 교사는 전직(轉職)을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교장들도 교사평가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상진 ‘전국 국공사립 초중고교 학교장 협의회’ 회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현재의 근평제도에 동료 교사 평가를 더해 교사종합평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부모와 학생도 평가에는 참여하되 의견을 참고하는 수준으로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교단 안팎이 교사평가제를 놓고 백가쟁명에 빠져 있지만 정작 교육부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정책과 이영식 연구관은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교사평가제는 안병영 교육 부총리의 첫 시험대이자 재임 기간 내내 교육 현안 가운데 하나가 될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