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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 의료 · 역사 분야에서 구명 작업 활발

드라마 <허 준>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극적인 요소로 채색된 허 준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로서의 허 준과, 그가 펴낸 의학서 <동의보감>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존 인물 허 준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실정이다. 현재 허 준 규명 작업은 크게 보아 개인사 ·한의학을 포함한 의학사적 위치, 보건학 및 생활사적 의미 같은 면에서 본격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 인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개인사 정리 작업이다. 지금까지 허 준과 관련해서는 정확한 고증이나 검토 없이 불확실한 사실들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다. 수년 전 나온 <소설 동의보감>이나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보듯이 △허준이 '어의(御醫)에 오르기 전 경상도 산음 땅(현 경남 산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거나, △유의태를 스승으로 하여 의술을 전수했고 △의술의 우열을 놓고 양예수와 일전을 겨루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현재 허 준의 개인사는 몇몇 연구자의 노력에 의해 상당 부분 잘못이 바로잡혀 가고 있다. 최근 한 소모임에서 허 준 관련 논문을 발표한 서지학자 이양재씨(한국고전문화진흥회 상임이사), 역시 최근 <동의보감>을 논문 주제로 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김 호씨(서울대국사학과)등의 업적이 대표적이다.

이양재씨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허 준은 1539년(중종 34년)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년)에 죽었다. 지금까지 허 준의 출생 연대는 1546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울러 허 준은, 지금까지 전해 온 것처럼 경기도 김포(또는 양천 ·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출생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장단군(현 파주시 소재)에서 태어났다.
"동양 의학 합리주의 보여준 본보기"

기존 설은 허 준이 1574년(선조 7년)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하고 있지만 이도 잘못일 가능성이 많다. 이씨의 연구에 따르면, 허 준은 과거에 급제한 것이 아니라 미암 유희춘이라는 인물의 천거에 의해 어의가 되었고, 내의원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경상도 산음 땅이 아니라 서울 동대문 근처에서 의학 수련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허 준이 젊은 시절 의술을 수려한 곳에 대해 김 호씨는 전남 담양을 지못하여 이양재씨와는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허 준 연구자들이 특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허 준의 사승관계와, 동시대 명의인 양예수와의 관계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허 준이 유의태로부터 의술을 전수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유의태는 철저하게 가공된 인물이다. 드라마의 유의태와 비슷한 인물로는 유이태가 있는데, 그는 숙종조에 활동했거나(김 호씨 설) 영조조에 태어났을 것(이양재씨 설)으로 추정되는 후대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드라마에서 본 내용을 곧장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라고 이양재씨는 말한다.

허 준이 양예수와 의술의 우열을 놓고 일전을 겨루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허 준 또는 그의 스승인 유의태의 '숙적'으로 묘사되는 양예수는 실제로는 허 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실질적인 스승'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최근 허 준 연구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경향은, 밥법론에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고 허 준의 속내를 파고드는 본격적인 '허 준 읽기'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의학 사상의 역사적 맥락을 더듬고자 시도한 김 호씨와, 동서양 의료 문화에 대한 비교 연구로써 허 준을 비롯한 한국의 의가를 주목하고 있는 신동원씨(전 <과학사상> 주간 ·<조선 사람의 생로병사> 저자)가 대표적이다. 김 호씨의 연구에 따르면, 허 준의 <동의보감>은 조선전기 의학의 종착역인 동시에 당대에 유행하던 의학 사상의 결정판이다. 신동원씨에게 허 준은 '동양 의학에도 합리주의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임과 동시에 '그 때까지는 엘리트주의에 머무르던 조선 시대 의학의 한계도 드러낸 본보기'로 받아들여진다.

허 준 연구의 본산이라 할 한의학계도 허 준에 대해 좀더 일반화한 설명을 내놓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의학계의 맹점은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의사학(醫史學) 연구 전통을 갖지 못하고, 자기네 역사 서술 작업을 남의 손에 맡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한의학계를 대표하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이 독자적인 의사학을 정립하기 위해 '의사학 교실'문을 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한의학계에서는 허 준과 <동의보감>을 의학사 전체 세계에서 좀더 폭넓게 서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의 최근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양 의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역학(易學) 사상이 어떤 양상으로 조선 시대 한의학에 투영되었는지를 조직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교수 연구에 따르면, 의학 측면에서 본 역학, 즉 '의역(醫易)'이 조선 한의학에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출발점 역시 <동의보감>이다. 그만큼 <동의보감>은 조선 시대 의학 논리를 형성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의학계 안팎에서 '허 준 읽기'와 '허 준 말하기'가 다각도로 시도되고 있지만, 연구자들은 허 준 연구가 여전히 '블랙 박스'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겉'이 아닌 '알맹이' 연구는 이제 막 그 중요성만 정확하게 감지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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