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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애매한 중간지대에서 행해지는 압수수색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새벽의 고요를 깨는 초인종 소리, 문을 열자마자 밀려드는 수사관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상황이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요. 압수수색은 형사사건에서 핵심적인 수사 방법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권리가 위협 받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법 규정의 이면에 숨겨진 압수수색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변호인과 수사기관 간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경찰이 민주노총 화물연대 풀무원분회의 서울 여의도 광고탑 고공 농성과 관련해 2015년 11월6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화물연대 사무실 압수수색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로막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이 민주노총 화물연대 풀무원분회의 서울 여의도 광고탑 고공 농성과 관련해 2015년 11월6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화물연대 사무실 압수수색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로막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압수수색에 드리워진 법의 그림자

“형사소송법 제121조(영장집행과 당사자의 참여);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압수ㆍ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121조는 변호인의 압수수색 참여권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모호한 표현은 현실에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인권보호수사규칙 제30조는 변호인의 참여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압수수색 현장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합니다, 변호인이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통지’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형사소송법 제122조의 ‘급속을 요하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라는 규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압수수색은 사전 통지 없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실체적 진실 발견 및 수사의 효율성’과 ‘개인의 권리 보호’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반영합니다. 증거인멸 방지라는 실무적 필요성과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법은 애매한 중간 지대를 택한 것입니다.  

예고 없는 방문객…급작스러운 압수수색의 실상

사전 통지 없이 진행되는 긴박한 압수수색은 피압수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변호인의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듭니다. 실제로 압수수색 현장에서 피압수자들은 “변호사님이 곧 오신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종종 요청합니다. 그러면 수사관들은 “변호사님이 지금 계신 위치가 어디냐” “이동하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 등의 질문을 하거나 “그렇게 오래 기다려 줄 수는 없다”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 끄는 거 아니냐”라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만약 변호인의 참여 없이 압수수색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이 순간 피압수자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합니다. 어떤 물건의 압수를 허용하고 어떤 것은 거부할 것인가. 진술을 해야 할까, 아니면 침묵해야 할까. 이러한 결정들은 향후 재판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압수수색의 초기 대응은 매우 중요합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변호인 참여권은 보장돼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형사소송법은 ‘참여할 수 있다’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반드시 보장해 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변호인 없이 진행되는 압수수색이 당장 위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형사소송의 근본 원칙과 충돌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변호인 부재의 위험성…법적 공백인가, 불가피한 현실인가

변호인 부재 시 피압수자는 스스로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와 내용을 철저히 확인하고, 영장 범위를 벗어난 압수가 행해지지 않는지 감시도 해야 하며, 압수 종료 후에는 압수 목록도 교부받아야 합니다. 이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현장은 종종 변호인과 수사관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으로 변모합니다. 한쪽에서는 의뢰인의 권리를 지키려 노력하고, 다른 쪽에서는 증거 확보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변호인은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영장 범위를 벗어난 압수를 강행하거나 임의제출 요구가 사실상 강제되는 상황이라면, 변호인의 즉각적인 개입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단순히 법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수사기관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피압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려고 하면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급박하게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피압수자 스스로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철저히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피압수자가 압수수색을 예상하고 미리 변호인을 선임했으리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급박한 순간에 혼자서도 버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뤄 보려고 합니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법 규정에 근거해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숙지한다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목소리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숙정 변호사
김숙정 변호사
■ 김숙정 변호사 약력 김숙정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검사 출신이다. 2012년 제1회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처음 검복을 입었다. 이후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1년 공수처 출범 당시 몸을 담았다. 2022년 공수처장 1호 표창을 받았고 2023년 공수처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됐다. 2023년 말 공수처를 떠나 법무법인 LKB에서 수사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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