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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전자정보 압수수색...비밀번호 공개 의무 없지만 자칫 구속될 수 있어

[편집자 주] 

‘공수처 1호 검사’ 출신 김숙정 법무법인 LKB 파트너 변호사가 검찰 업무의 속사정에 대해 시사저널에 격주로 연재합니다. 수사 기법과 함께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검사의 내심 등을 그때그때 이슈가 된 형사사건과 연관 지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공수처와 국회, 로펌 등을 두루 거친 김 변호사의 경험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생생함을 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수사관이 영장을 들이밀며 휴대전화를 압수하겠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휴대전화라는 전자정보 매체에 저장된 ‘전자정보’가 압수수색의 대상입니다. 비밀번호나 패턴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잠금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수사관에 대해 당사자가 하는 말 “비밀번호 안 가르쳐 드려도 되지 않나요?”

순간 압수수색 현장에는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억울하신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명하기 위해서라도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부터 최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해 압수수색에 성공하고자 하는 수사기관과, 비밀을 지키려고 하는 수사대상자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됩니다.

2022년 11월25일 정부세종2청사 소방청 차장실 앞에 놓인 압수수색 박스. ⓒ 연합뉴스
2022년 11월25일 정부세종2청사 소방청 차장실 앞에 놓인 압수수색 박스. ⓒ 연합뉴스

헌법이 보장하는, 비밀번호 뒤의 사생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가집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아주 중요한 기본권입니다.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무나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도록, 우리는 비밀번호를 설정해 두거나 잠금장치를 해둡니다. 살고 있는 집의 현관, 중요한 물건을 보관해 둔 금고, 사용하는 컴퓨터나 노트북, 휴대전화, 심지어는 컴퓨터 등의 전자정보 매체 안에 보안 폴더를 따로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강제수사란 누군가 숨기고 싶은 내밀한 영역을 침범하여 파헤치는 일이기 때문에 기본권의 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비밀번호 제공 여부로 싸울 일도 없었고, 범죄 사실과의 관련성 범위를 다투며 선별하기 위해 참관하는 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깊숙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고, 인터넷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며, SNS 이용 과정에서 위치정보가 기록되고, 금융서비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결제 수단으로까지 이용하게 되는 등, ‘휴대전화=사생활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잠금해제 기술’

범죄를 저지른 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압수수색이라면 긴급한 경우 문을 뜯거나 잠금장치를 뜯어내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수사기관은 형사소송법 제120조 제1항의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는 건정(鍵錠·잠금장치)을 열거나 개봉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란 규정을 근거로,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금고의 잠금장치나 다름 없으니 이를 풀기 위해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해 휴대전화를 열어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경우 비밀번호나 패턴 등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즉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한 쉽게 획득할 수 없습니다. 다만 휴대전화의 보안성이 나날이 견고해지는 것만큼이나 이를 뚫기 위한 기술력도 상당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노련한 수사관들은 휴대전화의 저장장치에 대한 접근이 수사의 성패를 가른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위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휴대전화 잠금을 풀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압수수색을 진행합니다. 여러 수사기관 출신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수사하다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수사기법을 고안해 비밀번호를 추적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내밀한 수사기법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증거인멸’이란 위험한 유혹...구속으로 가는 지름길

기사를 보다 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발견합니다. “압수수색을 해보니 휴대전화를 며칠 전에 잃어버렸다면서 새로 바꾼 사실이 확인됐다.” “압수수색 도중에 휴대전화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관련 정보를 직접 삭제하거나 안티 포렌식 앱을 설치했다.”

형사사건의 증거를 없애 버리거나 숨길 경우 형법상 증거인멸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형법에서는 ‘타인의’ 형사사건,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 관련 증거에 손을 대는 경우를 범죄로 규정합니다. 그 의미는, ‘나의’ 형사사건이라면 그 증거를 없애더라도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이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범행을 은폐하려는 것까지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본인의 증거인멸이 ‘증거인멸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증거를 마구 없애 버려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구속할 만한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협조 사실이나 증거인멸 시도의 유무는 수사기관이 구속영장 청구·신청 여부를 판단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범죄사실을 입증할 중요한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휴대전화를 파기하는 등의 행위가 포착된다면, 수사기관은 높은 확률로 구속영장을 청구·신청할 것입니다.

“비밀번호 안 가르쳐 드려도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현행법상 비밀번호를 공개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휴대전화 외에 다른 증거들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에 더 많은 증거가 담겨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인데도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정은 ‘구속이 필요한 사유’로 추가될 수 있습니다.

김숙정 법무법인 LKB 파트너변호사
김숙정 법무법인 LKB 파트너변호사

■ 김숙정 변호사 약력

김숙정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검사 출신이다. 2012년 제1회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처음 검복을 입었다. 이후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1년 공수처 출범 당시 몸을 담았다. 2022년 공수처장 1호 표창을 받았고 2023년 공수처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됐다. 2023년 말 공수처를 떠나 법무법인 LKB에서 수사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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