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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TV와 경쟁하며 주류 미디어 향한 발판 역할 했던 트위치의 전격 철수가 불러올 파장 예의주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지만, 특히 올해 대한민국 인터넷은 미국의 아마존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의 철수 선언과 함께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12월6일 트위치 측에서는 대한민국 통신사들이 부과하는 망 사용료가 지나치게 높아 한국 시장에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트위치 측 고지에 따르면 내년 2월27일 이후부터는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들이 트위치를 이용해 수익을 내면서 방송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아프리카TV는 12월15일 오후 트위치에서 플랫폼을 이동하는 스트리머와 유저에 대한 지원책인 ‘트위치 웰컴(Twitch Weclome)’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아프리카TV 방송 화면 캡처

아프리카TV·마리텔·유튜브 거치며 급성장

트위치의 철수 과정을 비롯해 대한민국 통신사와 플랫폼의 신경전은 초국적 빅테크와 정부 및 국가의 통신사업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의 주요 이정표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에 대해 섣불리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다. 트위치 철수로 인해 그보다 훨씬 더 가시적인 영향이 관찰될 곳은 다른 데에 있다. 트위치에서 활동하던 인터넷 방송인들이 트위치가 아닌 다른 어느 플랫폼으로 향할지의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터넷 방송이 주요 문화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후반에 국내 기업인 아프리카TV가 인터넷 방송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2007년에 시청자들의 방송인 유료 후원 시스템인 ‘별풍선’이 등장하면서 아프리카TV에서의 활동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전업 방송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후 인터넷 방송 문화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2015년 다음팟과 MBC가 협업한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더는 인터넷의 하위문화 정도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유튜브 시청자가 큰 폭으로 늘고, 유튜브 활동을 통해 광고 수익을 높게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보이자 한국에서도 유튜브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아프리카TV, 마리텔, 유튜브를 거치며 인터넷 방송은 비주류 문화에서 출발해 주류와 활발히 소통하는, 나아가 주류 미디어의 주도권을 침식하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은 20세기의 국민 문화처럼 구성원 모두가 단일한 미디어를 공유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도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시청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분화에 분화를 거듭했다. 많은 인터넷 방송인이 유튜브에 자신들의 라이브 방송 영상이나 편집본을 올려두지만, 이는 유튜브가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에 인지도를 높이고 충성스러운 팬층을 본방송에 유입시키기 위한 ‘모객’에 더 가깝다. 실제 방송이 이뤄지는 플랫폼은 시청자와 방송인들의 이합집산이 거듭되며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분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플랫폼이 바로 아프리카TV와 트위치였다. 2016년에는 아프리카TV의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방송인이 대거 이탈해 다른 플랫폼에 정착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때 이미 인지도가 높던 주요 게임 방송인들은 주로 트위치로 이적해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트위치 플랫폼 자체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트위치는 주로 리그오브레전드(LoL)를 비롯한 게임 방송, ‘오타쿠 문화’로 불리는 일본계 서브컬처를 다루는 방송, 아니면 주류 미디어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소위 ‘양지 지향’ 방송들이 모이는 생태계로 성장했다. 트위치에 기반을 둔 인터넷 방송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유튜브 구독자가 220만 명을 상회하는 전직 웹툰 작가 ‘침착맨’일 것이다.

트위치는 이처럼 인터넷 방송이라는 하위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주류 미디어 혹은 레거시 미디어로의 진출을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사례는 트위치 여성 스트리머(방송인)로 구성된, 10월18일 데뷔한 걸밴드 QWER이다. QWER은 역시 유명 인터넷 방송인인 김계란이 기획해 쵸단, 마젠타, 히나, 이시연 등을 한데 묶어 4인조 밴드로 데뷔시키겠다는 프로젝트의 결과로 탄생했다.

트위치 시청자 팬층을 기반으로 시작한 QWER의 성과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기획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오랜 기간 단련된 노하우로 연습생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는 K팝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데뷔한 QWER은 걸그룹 데뷔 음반 초동 판매 역대 9위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12월6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국에서의 철수를 발표하는 댄 클랜시 트위치 CEO ⓒ트위치 캡처

네이버의 신생 플랫폼 ‘치지직’ 행보 주목

트위치가 이처럼 주류와 양지로 향하려고 했던 반면, 아프리카TV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오타쿠 문화에 대한 강력한 반발 의식과 함께 주로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방송이 꾸준히 인기를 끌었으며, 여러 아프리카 BJ(방송인)가 하나의 ‘크루’를 이뤄 계속 상호작용하는 형식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트위치가 서브컬처에서 주류를 향해 가는 방향이었다면 아프리카TV는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의 음지를 장악하는 식으로 발전한 셈이다. 최근에는 방송인끼리 수익을 경쟁하고 배분받는 ‘엑셀방송’이라는 형식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동시에 여러 물의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분위기가 이렇게 큰 틀에서 양분된 상황에서 곧 현실화될 트위치의 한국 시장 철수는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될까. 이미 주요 플랫폼들은 트위치 내 유명 스트리머들의 이적과 정착을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 각기 발전한 방송 문화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프리카TV가 트위치 방송인을 성공적으로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제3의 방송 문화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트위치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야심이 엿보이는 네이버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치지직’의 행보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치지직이 신생 플랫폼이니만큼 다른 플랫폼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트위치 문화를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체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플랫폼이기에 방통위의 검열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인터넷 방송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킨 주체들이 거의 2030세대이기 때문에 청년층의 문화적 동향을 이해하는 데 인터넷 방송 업계의 흐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은 아프리카TV의 게임 방송인으로 처음 그 이름을 알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또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터넷 방송의 문법으로 당대표 토론회에 임했었고 팬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시간 소통을 통해 시청자들이 인터넷 방송인들을 선택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방송은 청년층의 의사가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미디어 양식이기도 하다. 2010년대는 아프리카와 트위치의 문화가 정치·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며 사회의 ‘인방화’가 일어났던 시기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트위치 이후에 만들어질 새로운 인터넷 방송 문화의 지형이 청년층의 문화적 풍경, 나아가 대한민국의 문화적 양상을 어떻게 바꿀지 주목할 이유가 충분하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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