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건 두고 경찰과 검찰 이견 왜?
골프장 대신 모든 형사상 책임 캐디에게 전가해 뒷말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골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전동카트가 커브길을 도는 과정에서 이용객이 떨어져 크게 다친 것이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5일 만에 뇌사 판정을 받고 숨을 거뒀다. 사고가 난 골프장은 이후 이용객이 떨어지지 않도록 카트 좌석에 별도의 봉을 설치했다.
골프장 안전사고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
이렇듯 최근 골프 인구가 증가하면서 골프장 안전사고 역시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골프장 안전사고는 2017년 6475건에서 2022년 11468건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골프장에 대한 법적 처분이 소극적이어서 유사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재발하고 있다.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은 최근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타구자 A씨, 경기팀장 B씨 및 대표이사 C씨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사고는 지난 2021년 10월 강원도 K골프장에서 발생했다. 캐디 D씨는 일행이었던 피해자(30대 여성) E씨와 다른 여성 일행 F씨를 태운 카트를 티박스 전방 왼쪽에 주차시키고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타구자 A씨는 첫 번째 티샷이 왼쪽으로 휘어 OB 지역으로 빠지자 캐디 D씨에게 멀리건을 받아 두 번째 티샷을 쳤다. 그 공은 왼쪽으로 더 크게 휘어 카트에 타고 있던 피해자 E씨의 눈을 강타했다. 피해자는 그 사고로 한쪽 눈이 파열돼 영구 실명됐고, 결국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사고가 발생한 홀의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티박스 전방 왼쪽은 산지, 오른쪽은 낭떠러지 지형이다. 때문에 K골프장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왼쪽을 보고 티샷 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카트 주차지점이 티박스 왼쪽 앞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할 경우 공이 카트로 향해 사고 위험성이 높은 특이한 구조인 것이다. 대다수 골프장은 사고 위험성을 감안해 카트 주차 위치를 티박스 앞에 두지 않음에도, K골프장은 티박스 앞에 카트를 주차시키는 위험한 구조로 계속 운영해 온 것이다. K골프장은 이번 사고로 위험성을 인지하고, 뒤늦게 골프장 코스 변경 공사를 전면 시행했다.
‘체육시설업 등록’ 골프장은 모두 안전하다?
경찰이 경기팀장 B씨와 대표이사 C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골프장 코스의 특성상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운영했어야 함에도 일반적인 안전 조치만 이행한 것은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은 K골프장의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경기팀장 B씨와 대표이사 C씨는 무혐의 결정을 하고, 모든 형사상 책임은 캐디에게만 있다고 판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C대표의 경우 ‘K골프장이 관계기관 승인을 얻고 준공했고, 체육시설업에 등록 돼 있으니 시설물에 하자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경기팀장 B씨는 ‘일반적인 안전 조치를 이행한 점이 인정 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홀이 위험한 구조임에도 K골프장이 별도의 안전 관리 매뉴얼이나 펜스, 그물망 등 안전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점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골프장 책임 면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체육시설업 등록이 되기만 하면 골프장 시설물에 하자가 없다는 것이니,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업무상 과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체육시설업이 따라야할 ‘체육시설법 시행규칙’을 보면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곳은 골프코스 사이에 20m 이상 간격을 둬야 하고, 어려운 경우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K골프장 역시 해당 홀은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곳으로 안전망을 설치해야하지만, 실제는 아니었다.
법원 역시 ‘골프장의 안전 관리 의무’에 무게를 두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지난 2019년 5월 J골프장 3번 홀에서 타구자가 티샷한 공이 4번 홀에서 경기 진행 중 3번 홀과 4번 홀 경계지역으로 공을 찾으러 갔던 50대 피해자 가슴에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재판부는 “홀 간격이 좁거나 인접하고 있어 주변 홀에서 친 타구가 잘못 날아가 인접 홀까지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골프장에서 그 홀 간격을 충분히 넓히거나, 펜스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플레이어들이 안전하게 골프경기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해야 한다”면서 “안전시설 미비가 이 사건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고 판시했다.
법원 판결도 골프장 안전관리 의무 강화 추세
심지어 검찰은 골프공으로 앞에 있던 일행을 쳐 실명에 이르게 한 타구자 A씨까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앞에 있는’ 일행을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않고 타구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 위반이므로, 과실치상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타구자는 동행자가 “카트 위치가 불안하다”고 한 말을 들었으므로 위험을 인지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서 이 판단이 또 뒤집혔다. 검찰은 ‘경미한 규칙 위반’이라는 일반 운동 경기 관련 판례를 인용하며, 타구자가 골프 카트 방향으로 공이 향할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보고 무혐의 결정을 했다.
그렇다면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은 어떨까.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올해 4월경 타구자 앞에 피해자가 탄 카트가 주차된 상태에서 타구자가 티샷을 했다가 피해자의 눈을 가격해 안구가 파열된 사건에서 타구자에게 과실치상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골프공의 진행 방향 전방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피해자가 그 진행 방향 부근에 있는 동안에는 공을 타격해서는 안 된다”면서 “피해자로 하여금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도록 한 다음 공을 타격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부산지법은 40대 골프장 이용객이 라운딩 중 일행이 친 공에 오른쪽 눈을 맞아 크게 다친 사건에 대해 공을 친 사람과 골프장 측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타구자가 자신이 치는 공의 방향 등을 예측해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지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이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골프는 타구자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충분히 확인한 후에 샷을 해야 하는데, 앞쪽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을 쳐서 상해를 입혔다면 최소한 과실은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