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방비 고지서 ‘폭탄’이 알려주는 진실
에너지 전환시대 대비한 제도 마련 시급

지난해 12월분 난방비 고지서는 폭탄이었다. 난방비가 이전의 3~4배로 뛰었다. 난방비 고지서는 마침 설 연휴와 겹쳐 날아와 논란이 증폭됐다. 난방비가 급등한 건 가스요금이 오른 데다, 한파에 난방 사용까지 늘어난 탓이다. 도시가스 요금은 2022년 네 차례 인상돼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38.5% 올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쓰는 열(난방·온수) 요금도 37.8% 뛰었다.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되는 LNG의 수입가격 폭등이 난방비 급등의 결정적 원인이다. LNG 도입 단가는 2021년 4월 톤당 385.5달러를 찍었고 지난해 9월에는 톤당 1470.4달러까지 상승했다. 역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것이 배경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에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며 파이프라인을 잠갔다. 유럽 각국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했다. 공급은 줄었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스 가격은 폭등했다.
ⓒ연합뉴스
연초부터 날아든 난방비 고지서 폭탄으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주택단지 계량기 모습ⓒ연합뉴스

‘9조원 손실’ 가스공사 외면한 정치권

LNG를 수입하는 한국가스공사의 손실이 쌓이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말부터다. 가스공사의 손실은 2021년 4분기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9조원으로 폭증했다. 연료비 인상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가스요금 급등의 충격이 국제 LNG 가격이 상승했던 시기에 적절한 요금 인상 시기를 놓친 탓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월 이후 1년9개월 동안 국제 천연가스 가격 폭등 상황 속에서도 가스공사의 요금 인상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2020년 말부터 LNG 가격이 1년간 3배가량 급등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주택용 가스요금을 2020년 7월 오히려 11.2% 인하한 뒤 계속 동결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인 작년 4월에야 소폭 인상했다. 아마도 정부로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국제 가격이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요금 인상을 미뤘을 것이다. 자칫 탈원전에 쏟아질 수 있는 비난도 의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22.6%였던 LNG발전 비율이 2021년에는 30.4%까지 상승했다. 여론을 의식해 에너지 가격 인상 시기를 놓친 지난 정부의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잘못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야당의 모습도 보기에 불편하지만 지난 정부 탓을 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 역시 국제 가격이 오른 만큼 요금을 올리고 있지는 않다. 가스공사의 적자 9조원을 올해 전액 회수하기 위해서는 오는 4월부터 가스요금을 현재 요금의 3배로 올려야 한다는 추산이 나온다. 작년 한 해 인상분의 7배를 더 올려야 한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와서 보면 책임이 분명하지만, 요금을 쉽게 올리지 못한 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스요금 인상은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정경제에 치명적이다. 국민 생활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요금 인상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돌이켜보면 과거 이명박 정부도 가스요금 인상을 미뤄 박근혜 정부가 5조원에 달하는 가스공사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정부는 가계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 올 1분기까지는 요금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분기에는 다시 올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요금보다 50%를 더 올려도 가스공사 적자는 2026년에야 털어낼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전 정권 탓인 것도 맞고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현 정부의 대응이 미흡한 것도 맞다. 에너지 문제도 결국은 정공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난방비는 국제유가에 연동된다. 가스는 100%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이다. 국제 가격 상승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외부충격이다. 원가를 반영한 요금 합리화가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용성 있는 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부담이 불가피하다면 현재와 미래로 부담을 나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세대가 국제 에너지 원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난방하고 그 비용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꼴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말하자면 고통을 최대한 줄이되 불가피한 고통에는 대비해야 한다.  

한시적인 취약계층 지원으로는 한계

요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해 나가면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소비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에 대해선 지원책을 강화하면 된다. 정부가 내놓은 긴급 대책의 내용은 취약계층 117만6000가구에 에너지 이용권 지원 금액을 기존 15만2000원에서 30만4000원으로 2배 인상하는 방안과 사회적 배려 대상인 160만 가구에 대한 가스비 할인액을 현재 9000∼3만6000원에서 2배로 인상한 1만8000∼7만2000원으로 확대하는 정도다.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4개월분 난방비 59만2000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가됐다. 취약계층 에너지 지원책을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책은 올해 겨울에 한시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야당은 지원 대상을 중산층 이상으로 확대하고 지원금도 늘리자고 주장한다. 소득 하위 80%인 4100만 명에게 난방비를 포함해, 1인당 10만~25만원을 차등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야당의 주장 역시 임시처방일 뿐이다. 올해만 적용되는 땜질 처방보다는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그나마 에너지 이용권 제도는 그리 효과적인 대책도 아니다. 미사용액이 지난 5년간 530억원에 이를 정도로 외면받고 있다. 난방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옳지만, 실효성도 높여야 하고 재원 조달 방안을 제도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스위스처럼 탄소세를 걷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난방비를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나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가정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일부를 지원하고 있고, 독일도 90억 유로를 투입해 정부가 가스요금을 일부 보전했다. 길게 보면 전기든 가스든 값싸게 쓸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지금의 가스요금 인상을 불러온 공급 부족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에너지 전환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24개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공식 선언했다. 유럽 각국은 에너지 전환 전략 추진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고, 미국도 청정에너지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은 발전원은 당연히 재생에너지다.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지만 돈이 많이 든다. 이제 막 시작된 ‘탈탄소화’는 앞으로 더욱 강력한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철에는 또 ‘전기요금 폭탄’이 예상된다. 앞으로 난방비나 전기료가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1월분 난방비 고지서는 아마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우리나라에 맞는 에너지 조합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