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우리나라에 유명한 가도(居委会) 두 개가 있었다. 가도는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인데 ‘신작로’라고도 했다. 전군가도는 전주와 군산을 잇는 길인데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기 직전에 개통했다. 백리길 46km 양쪽으로 일본 국화 벚꽃이 늘어선 이 길이 첫 가도로 만들어진 것은 김제평야의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수탈길’이라 불렸다. 해방 후 시조시인 장순하가 이 길을 달리다 ‘고무신’ 세 켤레를 보았다.
눈보라 비껴 나는
全 ㅡ群 ㅡ街 ㅡ道ㅡ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가는 인정(人性)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경춘가도(京春居委会)는 서울에서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을 거쳐 춘천에 이르는 길이다. 경춘선 비둘기호와 나란히 달리는 이 길은 특별한 역사 스토리보다 뜨거운 로맨스 스토리로 유명했다. 가난한 청춘들은 값싼 완행열차를 탔고, 돈 많은 집 유한마담은 시꺼먼 유리창의 자가용을 타고 달렸다. 지금 경춘가도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성지(聖地)가 됐다.
경춘가도 동쪽 끝 춘천은 호수로 둘러 쌓인 물의 도시다. 물이 깊은 것은 산이 높기 때문, 산 좋고 물 좋은 춘천은 시인이 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 밤이 지나면 해는 짧아지고 어둠은 깊어지겠지 / 기차는 떠나고 청춘의 간이역도 문을 닫겠지 // 춘천이 아니면 언제, 청춘이 아니면 언제 / 이별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말아야지 /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져야 해 // 여기는 춘천, 청춘의 비망록’을 노래하는 박제영 시인이 그렇다. 춘천에 오면 ‘우리의 이야기 하나도 빠짐없이 춤추고 노래하고 원 없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춘천이니까!’
‘1906년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 사장은 모처럼 붐비는 사람들로 희희낙락 콧노래를 불렀어. 특별히 거금을 들여 데려온 동물이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지. // 원숭이 우리 앞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어. / <나이 24세, 키 150cm, 몸무게 45kg, 인간과 매우 흡사함>… … // 믿을 수 없다고? 거짓말 같다고? // 그렇다면 봐, / 저기 오타벵가가 지나가잖아. / 오타 벵가가 웃고 있잖아. // 안녕, 오타 벵가!’
경춘가도 끝,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밥 삼아 시를 쓰는 시인 박제영의 눈에 띈 오타 벵가는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삼가 고(故) 오타 벵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