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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보다 더 강경한 투쟁 주장하는 IS-K
“미군 철수로 힘의 공백 생긴 아프간에 테러의 문 활짝 열려”
탈레반과 달리 IS-K는 자폭 테러 일삼아
탈레반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89)이 끝나고 이들에 맞서 싸웠던 지역 군벌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1994년 남부 칸다하르에서 설립됐다. 처음엔 마드라사(쿠란 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위를 위해 세웠지만,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1996년 카불에 입성했다. 이들은 타협적이고 계산적인 군벌들과 달리 잔혹한 폭력으로 악명을 떨쳤다. 카불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1987~92년 소련군 치하에서 공산정권 대통령을 지낸 무함마드 나지불라를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고문·거세한 뒤 처형해 대통령궁 앞에 매단 일이다. 탈레반의 지향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슬람 개혁·부흥 운동으로 외세에 맞서자는 인도 아대륙(현재의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무슬림들의 ‘데오반디’ 사상이 그 하나다. 유일신과의 일체와 정화를 중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살리피즘)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와하비즘은 622년 이슬람이 들어선 뒤 엄격한 샤리아(이슬람법)를 적용하던 초기 이슬람 시대 조상(살라프)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이다. 수니파로 통하는 이들은 성인을 숭배하며 묘소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시아파를 극도로 혐오한다. 음악·영화·사진·스포츠·오락 등을 금지하는 탈레반의 특징이 여기서 왔다. 탈레반이 시아파를 따르는 몽골계 소수민족인 하자라를 학살하고 박해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작 수니파의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최근 들어 쿠란에 없다는 이유로 여성의 운전 등을 허용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탈레반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7세기에 멈춰있다는 평이 나온다. 마지막 하나로 파슈툰족 고유의 풍속인 파슈툰왈리를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특성이 있다. 찾아온 손님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고, 남성은 수염을 기르며, 여성은 부르카를 쓰도록 강요하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간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뒤 주범인 알카에다 창립자 오사바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그해 10월7일 미군의 공격을 받고 권력을 잃었다. 당시 탈레반 에미르(이슬람 군주)였던 무함마드 오마르는 빈 라덴을 손님이자 재정적 지원자로 보호하고 있었다. 미국의 요구에 오마르는 “이슬람은 무슬림이 피난처를 요청하면 이를 제공하고 절대 적에게 넘기지 말라고 말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오마르의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이슬람의 종교 교의일 수도 있지만, 파슈툰왈리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IS-K는 이런 탈레반과 불화를 초래하며 이탈했던 하피즈 사에드 칸과 압둘 라우프 알리자 등이 주도해 설립했다. 칸은 아프간과 접경한 파키스탄 서부 지역 출신이며, 알리자는 아프간 서남부 헬만드주 출신의 파슈툰족이다. 칸은 IS-K에서 에미르를 지냈으며, 알리자는 서열 2위였다. 알리자는 미군의 아프간 침공 당시 포로가 돼 2007년까지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구금됐다 풀려났다. 이들은 2015년과 2016년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각각 숨졌다. 태생부터 탈레반에 불만이 있던 대원들이 이탈해 만들었으니 양측은 서로 상극일 수밖에 없다. 탈레반 내에서 더 강경한 투쟁을 주장하다 밀린 무장대원들이 IS-K에 속속 합류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IS-K도 기본적으로는 와하비즘(살라피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만 리더십이 다르고, 더욱 강경한 자세로 이름을 알리려는 몸부림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겠다. 탈레반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앞세운다면 IS-K는 자폭 공격을 주요 무기로 활용했다. 이들의 자폭 테러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들었으며, 민간인과 군인·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2018년 7월 파키스탄 마스퉁에서 14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자폭 테러로 악명을 떨쳤다. 2021년 5월에도 카불에서 자폭 테러로 90명의 아프간인을 살해했다. 자폭 테러는 상대를 겁주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 국제적으로 악명과 인지도가 높아지면 서구에 대항하는 전 세계의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자금과 인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해진다. 이는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면서 활용한 전략이기도 하다. 우선 지역에서 근거지를 확보한 뒤 세금 징수와 징병, 이슬람주의 강요 등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도시나 중앙정부를 노리는 것은 시리아·이라크의 IS와 아프간·파키스탄의 IS-K가 보여주는 공통적인 수법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IS-K의 공세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공항 연쇄 테러의 타깃은 미군 아닌 탈레반
IS-K는 파슈툰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탈레반과 달리 이슬람 지상주의를 앞세워 탈레반 이탈자는 물론 이웃한 파키스탄·인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무슬림을 대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IS-K는 지금까지 미군과는 물론 탈레반과도 지속적으로 싸워왔지만, 미군이 떠난 지금 이젠 탈레반과 전면전을 치를 분위기다. 이들이 벌인 카불 공항 연쇄 테러를 미군보다 탈레반에 대한 도전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더 큰 그림도 있다. 아프간발 테러의 글로벌 확산이다. 지난 6월 공개된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표 뒤 미군 철수가 본격화하면서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8000~1만 명의 이슬람주의자가 아프간에 밀입국했다. 8월15일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은 IS·알카에다 등의 테러 관련자를 포함한 수감자 수천 명을 풀어줬다. 때문에 미군 철수로 힘의 공백이 생긴 아프간에서 테러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테러는 아프간나 파키스탄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넘쳐 흐를 수 있다. 아프간의 진짜 문제는 탈레반 통치가 아니라 글로벌 테러의 온상 되는 것일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IS-K가 떠나는 미군의 뒤통수에 대고 벌인 끈질긴 테러는 지하드를 벌고 싶어 하는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될 수 있다. 미국 떠난 아프간에서 새로운 혼돈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