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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우주 배경 SF영화 《승리호》를 둘러싼 반응들
《승리호》를 둘러싼 극과 극 반응
결과는 여러모로 롤러코스터다. 그러니까 《승리호》를 둘러싼 반응은 극과 극이다. 거두절미하고, 영화 《승리호》에 대한 만족감은 당신이 기술력에 중점을 둘 것인가, 이야기를 우선시할 것인가에 따라 갈릴 수 있다. 일단 전자라면 당신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놀랄 것이다. 《승리호》의 기술력은 단순히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볼 만하다’ 수준이 아니다. 그건 할리우드 영화와 ‘차이가 없다’에 가깝다. 한국 시각효과(VFX)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신과 함께》나 최근 청룡영화상에서 기술상을 받은 《백두산》과 비교해 봐도 몇 년은 훌쩍 앞서간 느낌이다. ‘그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는 궁금증과 ‘할리우드 영화 제작비에 크게 못 미치는 돈으로 이런 때깔을?’이란 감탄이 솔직히 든다. 오랜 시간 이 장르의 발목을 잡아온 기술력의 한계를 《승리호》가 첫 번째 주자로 나서 바로 해결해 버린 셈이다. 나는 이것을 성취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성을 보여준 것과 그냥 넘어버린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그리고 반대편에 이런 반박이 있다. “바보야, 문제는 드라마야!” 맞다. 《승리호》의 전개는 너무 쉽게 예상되고, 캐릭터들은 ‘선과 악’으로 간편하게 편 갈라져 있으며, 대사는 느슨한데, 기시감마저 짙다. 일단 빈부격차로 양분된 세계관에서 《엘리시움》을 떠올리지 않기란 힘들다. 캐릭터 얼개에선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이 연상된다. 조성희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승리호’ 멤버들의 직업은 일본 애니메이션 《플라네테스》 속 주인공의 그것이다. 레퍼런스(참고 자료)가 많다는 게 단점은 아니다. 세상 모든 영화는 어쩌면 레퍼런스의 응용이기도 하니까.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어떻게 그 영화만의 인장을 찍어내는가인데, 《승리호》에는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인장이 옅다. 가령 원빈의 《아저씨》가 《테이큰》 붕어빵이라는 약점 안에서도 스타일이 남다른 액션으로 관객의 시선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킹덤》이 좀비물의 홍수 속에서 조선시대라는 특수한 배경으로 특이함을 입었다면, 《승리호》에는 이러한 색다름이 부족하다. 다만 K신파가 너무 심해 오글거려서 못 보겠다는 일각의 의견들엔 쉬이 동의하기 힘들다. 그렇게 따지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하는 《인터스텔라》의 가족주의는 어쩌라고. 오히려 《승리호》는 신파와 거리를 두려는 흔적을 꽤 드러내는데, 가령 이 영화엔 그 흔한 신파 러브스토리가 없다. 송중기와 김태리는 끈적한 눈빛 대신 으르렁거리는 데 서로의 시간을 더 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신파’라는 자장 안에서 비판받는 것은, 이야기가 너무 기성품이라, 낡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이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승리호》는 할리우드 장르 문법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PC(정치적 올바름)까지도 흡수했다. 다인종을 모아놓고 해결은 한국인들이 했으니, 누군가는 또 ‘국뽕’이라 비난할까.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는 거다. 다양성을 품은 것은 분명 높게 평가받을 만한 일인데 아뿔싸, 외국인 연기자들의 연기가 엉성하다. 결과적으로 극의 몰입도를 저해하는 요소가 돼 버린 측면이 있다.엄청난 가성비 vs “바보야, 문제는 드라마야”
이 영화에 대한 혹독한 호불호는 조성희라는 이름에서도 나올 것이다. ‘월드’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붙나. ‘조성희 월드’라는 말이 충무로에 통용돼 온 데는, 그가 할리우드 관습을 한국적인 것들과 뒤섞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그림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조성희의 존재감을 영화계에 알린 단편 《남매의 집》이 그랬고, 토종과 외래종이 결합한 《늑대소년》과 《탐정 홍길동》이 그랬다. 아마 《승리호》가 당도했을 때 조성희의 지지자들은 그가 이번엔 또 어떤 흥미로운 비빔밥을 보여줄까 기대했을 텐데, 《승리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보아 온 그림들을 수준급으로 흡수하는 능력은 보여줬으나, ‘조성희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나는 여기에서 애꿎게도 지난해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을 호출해 본다. 기존 상업영화 문법에서 벗어난 불균질함으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던 영화. 그로 인해 ‘감독의 야망을 스튜디오가 조절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던 영화를 말이다. 《승리호》를 둘러싸고는 이런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감독이 스튜디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는. 그래서 너무 평평해졌다는. 무엇이 진실일까.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다. 아니, 그래서 우린 더 집요하게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승리호》로 돌아가보자. 한국의 첫 우주 영화가 발을 내디뎠는데, 거기엔 혹평도 있고 호평도 있고, 다행히 그로 인한 논쟁도 있다. 양비론적 태도가 이 영화엔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 의견을 확실히 밝히자면, 개인적으로는 ‘호’ 쪽이다. 성공에서도 무언가를 배우지만 실패에서도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승리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품고 있다고 본다. ‘우주’를 내세운 충무로 작품들이 줄지어 대기 중인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로서 첫 단추를 잘 채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대기 중인 우주 영화
《승리호》를 시작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들이 연착륙할 예정이다. 가장 크게 기대를 모으는 건 《신과 함께》를 만든 김용화 감독의 《더 문》. 우주에 홀로 남겨진 남자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지구의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로, 설경구와 도경수가 탑승한다. 넷플릭스행을 확정한 《고요의 바다》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프로듀서가 참여한 작품으로 공유와 이준이 호흡을 맞춘다.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석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벌새》로 국내외 상을 휩쓴 김보라 감독도 우주와 도킹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SF소설가 김초엽의 단편소설 《스펙트럼》이 원작으로 대세들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