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6만 명을 넘겼다. 인구의 0.1%가 매일 새롭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변이 바이러스의 거센 확산세에 영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양새다. 영국 정부는 세 번째 봉쇄를 단행했다. 세계 최초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종식의 기대감을 키운 영국이 어쩌다 ‘최악의 확산국’이 됐을까.
5일(현지 시각)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수는 6만916명 늘어 누적 277만4479명을 기록했다. 영국의 전체 인구가 약 680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인구의 4%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 인구 5180만여 명의 한국과 비교하면, 영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5일 자정까지 누적 6만5818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전체 인구 5180만여 명 가운데 0.1%가 감염됐다.
사망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5일(현지 시각) 하루 영국 내에서 코로나19로 830명이 사망해 누적 7만6305명이 됐다. 세계 6위 수준이며, 유럽 내 기존 1위였던 이탈리아(7만6329명)와 단 24명 차이다. 이탈리아보다 영국의 확산세가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 곧 유럽 내 사망자 규모 1위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내 확산세의 주요 원인으로는 변이 바이러스가 꼽힌다. 지난 9월 영국 남동부에서 처음 발견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VUI-202012/01)는 기존 바이러스 대비 전파력이 최대 70% 강하다. 강력한 전파력 탓에 현재 영국에서 발생하는 신규 확진자의 60% 이상이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변이 바이러스 자체보다 영국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정부가 코로나19 1‧2차 대유행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봉쇄 정책을 성급하게 완화한 데다, 의료 체계도 충분히 보완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의학저널 《란셋(Lancet)》의 편집장 리처드 호튼은 초기 영국 정부의 행태를 “한 세대 동안 가장 큰 과학 정책 실패로 기록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책이 안일하다는 지적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3월 1차 대유행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지도부가 자국의 의료체계를 과신하면서 초동 대처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이탈리아 등 유럽 대다수 국가가 전국 봉쇄령을 단행할 때 존슨 내각은 ‘집단면역’을 내세우며 봉쇄시기를 미뤘다. 마스크 착용도 권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영국은 3월 말에야 봉쇄 조치를 내렸으며 이후 존슨 총리와 맷 행콕 보건 장관 네이딘 도리스 보건차관 등이 코로나19에 잇따라 감염되며 국제적 망신을 샀다.
당시 영국에서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주목했다. 세계 4대 의학 학술지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학저널에 ‘영국은 한국의 코로나19 접근법을 따라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리면서다. 해당 논문의 저자는 “한국은 ‘검사-추적-격리’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한 반면 영국은 중도 포기했다”는 점을 가장 큰 차이로 들면서 영국 정부의 방역 대책을 비판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비난이 거세지자 영국 정부는 뒤늦게 강력한 방역 대책을 추진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3월 1차 봉쇄, 11월 2차 봉쇄에 이어 지난 4일 3차 봉쇄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영국인들은 식료품이나 의약품 구입 등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집에 머물러야 한다. 또 각급 학교와 대학은 다음달 중간 방학까지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고, 식당은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해당 조치는 다음달 22일까지 7주간 이어진다. 존슨 총리는 “앞으로 몇 주가 가장 힘든 시간이 되겠지만, 싸움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믿는다”며 국민들이 코로나 대응 조치를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