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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일정표엔 밥 먹고 술 마시고 약속 빽빽
보좌진 “재택근무도 아예 못 하게 해”

“(국회의원) 배지가 백신인 줄 아는 분이 참 많다.” 국회 등 정치권 관계자들이 익명으로 글을 남기는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이하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가운데 하나다. 글쓴이는 “국민한테는 모임을 자제해 달라면서 의원님들은 저녁 모임, 기자들과의 오찬 등이 전혀 줄지 않는다. 저녁 술 약속이 겨우 9시까지로 강제 단축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11일 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된 사진 ⓒ연합뉴스
앞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11일 자신의 SNS에 지인들과의 와인 모임 사진을 올렸다가 ‘코로나19가 심각한데 와인 파티를 하고 있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 의원 사태가 터진 직후 대나무숲엔 앞의 글과 비슷한 정치인들의 코로나19 불감증을 지적하는 글이 여러 편 올라왔다. 국회는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으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민단체 관계자, 민원인, 언론인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다시 전국으로 퍼진다. 그만큼 정치권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선 위험이 매우 큰 곳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실제로 정치권에 만연해 있는 코로나19 불감증은 심각해 보였다.
ⓒ일러스트 정찬동

꽉 찬 오·만찬, 방역 방침도 무시하는 의원들

연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나들고 서울시 등 수도권이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12월21일 저녁과 22일 점심에도 국회 앞 여의도 식당가에선 식당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정치인과 국회 관계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많은 정치인이 즐겨 찾는 국회 앞 한 한정식집 관계자는 “의원 예약이 많이 줄긴 했지만, 하루에 4~5건은 꼭 있는 것 같다”며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모든 분이 룸을 찾진 않았지만, 요즘엔 룸이 없으면 예약을 안 한다. 주변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 등에 따르면 다수의 의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상황 속에서도 식사 약속 등 일정들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해 왔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계속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큰 모임은 취소됐지만, 여전히 의원의 오·만찬 일정은 거의 꽉 차 있다. 면담이나 행사 일정도 상대방이나 주최 측이 취소하지 않는 한 그대로 진행한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의원의 보좌관은 “윤미향 의원 일로 당에서도 경고가 있고 해서 조심은 하지만 여전히 의원들끼리의 식사 약속 등을 비롯해 사적 술 모임이 거의 항상 있다”며 “의원들은 코로나19는 먼 얘기로 여긴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의원들이 주말에 각 지역으로 돌아가서도 일정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소속 다른 의원의 보좌진은 “요즘에도 의원은 주말에 지역에 내려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난다”며 “의원도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를 갖곤 있지만, ‘정치인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의원들이 국회 내 방역 방침을 어기는 경우도 흔했다. 국회 사무처는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12월8일 ‘3분의 1 이상 재택근무를 의무 시행한다’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각 의원실에서 이 방침이 무시되는 경우가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12월10일 민주당보좌진협의회의 조사 결과, 의원실 174곳 중 재택근무나 연가를 실시하는 곳은 70여 곳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보좌진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이러한 상황은 비슷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재선 의원 보좌진은 “우리 의원실은 한 명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다”며 “의원이 재택근무를 바라지 않는다. 최근 국회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다들 불안해하고 있지만, 의원이 워낙 단호해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 보좌진도 “처음 방침이 내려왔을 땐 조금 시행을 하더니 요즘엔 모두 출근하고 있다”며 “사실 대부분의 업무가 재택근무로 가능한데도 의원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심지어 ‘대나무숲’엔 겉으로만 방역 방침을 지키는 ‘꼼수’ 행태에 대한 폭로가 올라오기도 했다. 한 국회 직원은 모 의원실이 3분의 1 재택 방침을 지키기 위해 보좌진에게 휴가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뒤 실제론 출근을 시켜 업무를 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이 기본적인 방역에 대해서도 무신경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의 보좌진은 “사무실 내에서 보좌진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지만 정작 의원 자신은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민주당 소속 의원 보좌진은 “상임위 회의장 내 보좌진 배석 금지 등의 방침이 있는데 의원이 계속 무시하고 앉아 있으라고 해 난감했던 적이 많다”며 “의원들이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례는 흔하고 넘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원들에 대한 국회 내 방역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국회 본청을 비롯해 의원회관 등 국회 건물 주 출입 현관에선 열 체크 등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지만, 의원들이 주로 출입하는 지하주차장 출입 통로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차량이 진입하는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열 체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출근시간대에는 아예 열 체크를 하지 않았고, 그 외의 시간대에는 운전자에 대해서만 실시했다. 뒷좌석에 타고 있는 의원은 방역에서도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방역 지침 철저히 지켜야”

정치권의 코로나19와 관련한 인식 문제는 의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나 각 정당의 정치 일정에 대해서도 우려들이 제기된다. 화상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각 정당의 오전 회의, 청문회 등 정치권의 대다수 일정은 그대로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방역수칙을 지키고 인원을 줄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다른 곳보다 밀집 인원이 많은 정치권 특성상 위험성은 크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 보좌진은 “화상으로 해도 잘 진행되는데 굳이 모이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오히려 의원실 개별적으로는 수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 같지만, 정당 등 집단에서 잘 지켜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여야 정당의 안일한 방역 인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기 직전이었던 12월7일 여야 의원들과 동원된 보좌진 수십 명은 공수처법 처리를 둘러싸고 좁은 국회 복도에서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등 밀접 접촉을 해 논란을 불렀다. 코로나19 전문가들은 정치권도 결코 방역에서 자유로워선 안 되며 오히려 국가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염병 및 백신 권위자인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국회 같은 곳은 한 명만 감염돼도 의사 일정이 영향을 받고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대통령이 됐든 정치인이 됐든 누구든 방역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현재까진 마스크가 가장 좋은 백신인데 정치인이라고 해도 마스크를 잠시라도 벗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과의 식사, 면담 등을 일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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