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플라자 붕괴 사고로 열악한 근무 환경 드러나
기업 차원에서의 변화·소비자의 '착한 소비' 요구돼
패션산업은 노동착취 문제를 안고 있다. 유행주기가 짧고 값이 싼 제품들의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패션 브랜드는 의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특히 패스트 패션은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이 싼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마련한다.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인 라나플라자 건물이 붕괴해 1100명의 노동자가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패스트 패션에 대한 각성이 일기도 했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들의 엄청난 물량과 짧은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단돈 260원의 시급을 받으며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쉴 새 없이 일하던 이들이었다. 관리자들은 건물에 금이 가 위험하다며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달 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협박했고, 한 시간 후 건물은 무너졌다.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관행, 건물 붕괴가 예고됐음에도 정해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의류 생산의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뒤에 감춰져 있던 만성적인 저임금 문제와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무 환경을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누가 나의 옷을 만들었나(Who made my clothes)’라는 캠페인부터, 사회적 책임을 약속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성명 발표도 이어졌다. 참사 후 일부 기업은 사고 재발 방지와 의류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안전협약 가입을 결정했지만, 안전협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집회를 벌이겠다는 노동자 단체들의 경고가 나온 후에야 협약 가입을 결정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기업도 있었다. 자체 안전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하겠다며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 방안으로 제시된 협약 가입조차 거부한 것이다.
영국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탠시 E.호스킨스는 저서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를 통해 “유행주기가 짧고 값이 싼 패스트 패션의 등장과 더불어 의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 심화된다. 최고라고 추앙받는 명품조차도 실제 노동 비용이나 생산 방식을 감추며 자신들을 신화화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 착취 행위가 들통난 브랜드들의 목록은 끝도 없다. 저가 브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H&M,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컨버스, 갭, DKNY, 리바이스, 막스 앤 스펜서, 카렌 밀렌, 랄프 로렌, 버버리, 그 외 수백 개의 브랜드를 포함해 그 목록은 늘어만 간다”고 비판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국가·기업 차원에서의 변화도 요구된다. 영국 하원 환경검사위원회는 영국 10대 패션기업 대표들에게 리사이클 원자재 사용 내역,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한 구체적 노력 등 환경과 관련된 소명뿐 아니라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 지불, 노동력 착취 여부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패션산업에 가려진 노동 착취의 문제는 소비자들에게도 ’착한 소비는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패션업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패션 레볼루션’의 공동 창립자인 오솔라 드 카스트로 디자이너는 미국 CBS 인터뷰를 통해 “(방글라데시) 참사 이후 소비자들의 행동도 변화했다. 우리는 더 나은 제품만 요구할 게 아니라 더 나은 구매 습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